“아시아선수촌 자리에 포로수용소 있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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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 향토사위원, 미군 자료 공개
6·25 때 3년간 최대 1만 명 수용
건립 당시 주민 46명 반발 드러나

8일 열린 세미나에서 황구 전문위원이 1952년 당시 기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8일 열린 세미나에서 황구 전문위원이 1952년 당시 기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지금의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자리에 6·25 전쟁 당시 대규모 포로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공개됐다. 수용소 건립 과정에서 미군의 토지 징발에 지역 주민이 크게 반발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간 여러 문헌을 통해 포로수용소의 존재가 '사실상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미군 자료를 통해 이를 확인함으로써 포로수용소의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지난 8일 해운대구문화복합센터에서 열린 2023 해운대문화원 향토사 세미나에서 황구 향토사연구소 전문위원이 '해운대구 반여동의 포로수용소 이야기'라는 주제 발표를 했다. 이 발표를 통해 그간 오랫동안 묻혀 있던 의미 있는 지역사가 비로소 세상에 공개됐다.

반여동 포로수용소는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다. 〈부산역사문화대전〉 ‘부산 포로수용소’편에도 “영도 해동중학교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졌다가, 뒤에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 건설이 끝나자 통합했다”라는 정도로만 기술되어 있다. 반여동 포로수용소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황 위원은 반여동 포로수용소 용지 강제 수용과 관련해 당시 주민들이 강력 반발한 미군 자료를 공개해 반여동 포로수용소의 존재를 방증했다. 해당 자료는 1950년 포로수용소 용지 강제 수용에 대한 주민 46명의 명단이 첨부된 반대 진정서로, 미국 제2군수사령부의 내부 파일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미시시피대학 인류학 및 한국학과 브리지 마틴 부교수가 입수해 지난 7월 해운대문화원 방문 때 전달했다.

1950년 당시 장산과 수영강의 사이에 둔 논과 밭, 야산 등 3만 평의 토지를 미군에게 강제 징발당할 처지가 되자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미군 장비 앞에 드러눕기까지 했다고 한다. 양성봉 경남도지사의 설득으로 미군과 농민들 사이에 보상 문제가 논의되었지만 그 결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세미나에서는 1950년 10월에 반여동 수용소가 세워져 1952년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을 선포할 때까지 3년간 포로가 적게는 2000명, 많을 때는 1만 명에 이르렀다는 구체적 사실도 나왔다. 황 위원은 “어떤 경위로 반여동에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수용소 운영은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연명한 반여동 46명의 후손들도 만나 그 후 이야기도 들어봐야 반여동 포로수용소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틴 교수는 내년에 새로운 자료를 들고 다시 부산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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