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해양문화 혁신으로 맞는 부산의 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느닷없는 강추위에 움츠러든 형국에 다를 바 없다. 바로 우리 부산의 슬픈 표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김포시를 편입하는 메가시티 서울 담론이 지방시대위원회가 제시한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을 무색하게 한 뒤, 희망을 걸었던 ‘2030부산엑스포’도 물거품이 되었다. 연달아 한파가 몰아닥쳤으니 부산의 체온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도무지 미래가 사라지는 느낌이고 도저한 상실감으로 우울하다. 그 누가 부산의 눈물을 닦아주고 차갑게 식은 몸을 데워줄 것인가? 더없이 거대해지는 수도 서울이 그렇게 하겠는가? 아직 남은 지방의 활력조차 모두 흡인하려는 기세가 등등하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권력의 관음증적 시선을 쉽사리 거둘 수 있겠는가? 그러니 ‘노인과 바다’니 ‘촌 동네’니 하는 말도 어쨌든 사라지지 않을 터이다.

‘2030부산엑스포’는 희망고문이라기보다 하나의 환상이었다. 지난 몇 년간 온통 부산을 휘감고 있었으니 그것이 사라진 자리가 텅 비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맞았다. 마치 심리학에서 우리를 지배하던 초자아가 사라지면서 어쩌지 못하는 방황의 시간이 도래하는 현상과 다를 바 없다. 어떤 의미에선 안개가 걷히면서 부산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계기이기도 하다. 환상과 환멸의 거리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알파와 오메가처럼 가깝다. 환멸의 상황에서 ‘슬픔의 힘’을 ‘새 희망의 정수리’에 들어부을 일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해 멈추고 되돌아보아야 할 때를 맞았다.

희망 건 2030부산엑스포 물거품 돼

환상 걷히면서 부산 본모습 제대로 봐

이제 국가 주도 메가 이벤트서 벗어나

해양 관점서 도시 디자인하고 집적을

원양어업 혁신·크루즈 항로 활성화로

수도권 일극에 대응하는 주체되어야

미래는 환상이 아니라 과거의 유업으로부터 오는 한 줄기 빛이다. 엑스포라는 판타지가 사라졌어도 부산은 변함없이 여전하다. 부산의 지리를 부채꼴로 상상한 적이 있다. 바다의 시점에서 부산항을 가운데 두고 동과 서로 펼쳐진 형상으로 보았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니 바다를 향해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웅비의 모습이라고 해도 되겠다. 물론 이 또한 상상의 이미지이므로 동감을 권유할 의도는 없다. 무엇보다 부산항의 존재를 오롯하게 다시 감각하고 사유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국가가 주도한 글로벌 스케일의 메가 이벤트가 지닌 거시적 전망에서 벗어나 다시 로컬의 미시적 분석과 실천으로 돌아오자는 의미를 담는다. 부산항을 가운데 두고서 연안의 60여 개 항구와 포구를 아울러 낙동강 유역을 포함하는 다층적인 문화 혁신의 계기를 맞았다는 생각이다. 바다는 부산의 미래다. 부산의 모든 길은 항구와 포구를 향하며 부산항에 이르러 해협을 지나 대양을 향한다. 이와 같은 공간 인식과 공간 개조가 부산을 몰락하는 도시가 아니라 번영하는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서울 중심주의나 일극 체제의 구심력에 맞설 원심력은 정책이나 전략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미 국가가 일극 체제의 행위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와 자본, 그리고 권력이 소위 수도권 편향으로 기울어졌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부산 스스로 다극화의 원심력을 생성하는 주체가 돼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바다에서 온다. 바다의 관점에서 부산의 과거는 서울에 비등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에는 제국의 바다에 갇혀 해협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관부연락선 등이 오간 부산의 지위는 만만치 않다. 해방으로 우리의 해양도 해방됐다.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항이 차지한 위상을 다시 숙고해야 한다. 단지 피란수도라는 담론에 한정하지 않고 부산항의 지속적인 위치를 따져야 한다. 근대화는 대양과의 접속으로 가능했다. 상선과 원양어선이 오대양을 누비지 않은 한국의 근대를 상상하긴 어렵다. 부산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오늘이 가능했겠는가?

부산의 문화 혁신은 달리 해양문화 혁신이다. 해양의 시점에서 도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첨단 해양 산업을 집적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해양과 수산의 현대화는 더 늦출 수 없는 일이다. 노후화한 원양어업을 혁신하고 연안과 대양을 오가는 크루즈 항로를 활성화해야 한다. 해양문화 산업 전반을 통괄하는 기구를 만들고 해양문화를 진작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성해야 한다. 가령, 해양문화를 관장하는 독립 기구를 만들어 조선통신사 사업이나 해양 민속 유산산업, 해양문학제 등과 같은 일을 하게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 기관인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도 실현해야 한다. 그럴 때 부산은 명실상부한 해양문화도시, 첨단 해양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고, 수도권 일극에 대응하는 남부권의 원심력을 확장하는 주체가 된다. 바다가 부산만의 미래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 과거의 역사는 바다가 한국의 존립과 미래였음을 알게 하지 않는가? 왜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는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