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500만 원짜리 프러포즈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18년 여자 친구 조지나 로드리게스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프러포즈 자체도 화제였지만, 당시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건 프러포즈에 호날두가 쓴 비용이었다. 그때 호날두는 런던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프러포즈를 했는데, 음식값이 2만 7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4400만 원이 넘었다. ‘뭐, 호날두니까!’라는 체념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아무튼 씁쓸한 그 무엇이 가슴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연인들 사이 프러포즈 행태가 호날두 뺨칠 기세다. 다이아 반지는 필수이고, 거기에 소위 명품 가방도 곁들여야 한다. 그뿐인가. 프러포즈 장소도 고급 레스토랑 따위는 이제 환영받지 못한다. 특급호텔의 화려한 방 하나는 일찌감치 예약해 둬야 하고, 거기서 최신 유행의 ‘이벤트’도 벌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프러포즈 한 번에 못해도 수백만 원이 들어간다. 호텔들마다 프러포즈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데, 무려 500만 원이 넘는 것도 요즘 같은 성탄절과 연말을 앞둔 시기에는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이런 프러포즈는 이미 결혼을 향한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 듯하다. 허영이라 탄식하는 사람도 많으나,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500만 원짜리 프러포즈’를 마다하지 않는 심리의 근저에는 ‘저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지 싶다. 연인 사이인데도 “이 정도는 해줘야!”라거나 “왜 이 정도도 못해줘?”라는 과시와 따짐의 말은 그래서 가능한 것일 테다.
여하튼, 이런 세태에 비춰 볼 만한 프러포즈가 있었다. 지난해 향년 101세로 별세한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 이야기다. 이 여사는 2012년 제주도 서귀포시에 목재 팔레트 하나를 기증했다. 남편 이중섭(1916~1956) 화백이 생전에 쓰던 팔레트였는데, 이 화백이 1943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이 여사에게 프러포즈의 징표로 맡긴 것이었다. 팔레트를 기증하면서 이 여사는 “70여 년간 소중하게 보관해 온 남편의 분신”이라고 했다.
이 여사는 이 화백이 ‘팔레트 프러포즈’ 이후 소식이 없자 1945년 4월 부산에 있던 이 화백을 찾아와 결혼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같이 산 기간은 7년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이 여사는 팔레트로 인해 맺어진 그 사랑의 추억으로 길고 긴 남은 생을 버텼다고 한다. 요즘 청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