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법기리 요지, ‘430년만의 귀향’에 이목 집중
일본 끌려간 도공 15대 후예 심수관
발굴 비용 제안한 노무라 재단 참가
신한균 “강진·부안처럼 부흥시켜야”
20일 양산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제2회 법기도자 국제공모전 초대작가전’ 개막식에는 눈에 띄는 3명의 인물이 있었다.
첫 번째가 조선 도공의 후예인 심수관 씨. 심 씨는 한참을 고심하다 방명록에 “산과 물과 바다를 건너 430년 만에 돌아온 15대 심수관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선조 심당길은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다. 그 뒤 후손들이 규슈 가고시마에서 대대로 가업을 이어 심수관요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자기 명가로 일궜다. 12대부터 후손들은 대를 이어가며 본명 대신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습명(襲名)하고 있다. 14대 심수관은 한·일 문화교류에 힘쓴 공을 인정받아 1989년 한국 정부로부터 가고시마 명예총영사라는 직함을 얻었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쓴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1969년)에는 14대 심수관이 어린 시절 일본에서 받은 핍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15대 심수관은 “420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도자기도 많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원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조가 쓰던 것과 같은 흙으로 만든 작품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과 일본이 도자기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선친에 이어 역시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활동하고 있다.
두 번째는 타니 아키라 일본 노무라 미술관 관장이다. 노무라 미술관은 일본 노무라금융그룹의 창립자인 노무라 도쿠시치가 수집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세워져, 한국의 전통 다완과 한국 현대작가들의 다완을 전시해 왔다. 2006년에는 노무라 문화재단이 법기리 요지의 발굴 결과를 가장 먼저 받는 조건으로 발굴 비용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아키라 관장은 20여 년 전부터 법기리 요지에서 일본에서 전해오는 고려다완과 유사한 사금파리를 무수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법기리 가마터 발굴조사가 정식으로 시작되면서 고려다완을 생산하던 가마라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이 가마에서 생산했던 도자기 관련 상황의 전모가 밝혀지면 고려다완 연구가 크게 진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번 행사를 주최한 법기도자 신한균 이사장이다. 그는 조선사발을 최초로 재현한 신정희 선생의 대를 이은 도예가이자, 소설 <신의 그릇>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신 씨는 “양산 법기리 요지와 강진 고려청자 요지, 부안 유천리 요지는 1963년 같은 날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강진과 부안은 박물관이 설립되고 도자기 축제를 통해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어 우리와 비교가 된다. 강진과 부안은 두 사적지를 연계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협약식까지 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법기리 요지의 현실을 답답해하며 “사적 100호 양산 법기리 요지의 부흥을 위해 결성된 사회단체인 법기도자를 밀어달라”고 당부했다.
양산시는 2021년에 2030년까지 404억 원을 들여 법기리 요지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사업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 후손들의 작품과 430년 전 법기요지 생산품의 연관성을 찾는 재미가 있는 이번 전시는 23일까지 열린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