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봉사왕’ 시신 기증하며 마지막까지 사회에 여운 남겼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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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어른” 공도연 할머니 82세 별세
죽어서도 도움되고자 부부가 ‘시신 기증’
“가난 설움 잘 알아”…나물·폐지 팔아 기부
‘봉사일기’엔 "일일이 보살피지 못해 미안"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의령군 제공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 생전 모습. 의령군 제공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사진) 할머니가 1999년부터 써 내려온 ‘봉사일기’ 내용 일부다.

의령군은 지난 9월 13일 공 할머니가 노환으로 하늘의 별이 됐다는 소식을 뒤늦게 확인, 최근 일반에 알렸다.

향년 82세. 그의 마지막 봉사는 ‘시신 기증’으로, 죽어서도 주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자녀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보내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할머니는 박정희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선행과 공적으로 표창만 60번 넘게 받았다. 2020년에는 사회공헌과 모범 노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봉사의 계기는 가난으로 인한 설움이었다. 17살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공 할머니는 이웃에게 밥 동냥을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떠 내다 팔았다. 그렇게 쌈짓돈을 모아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뒤이어 논 1000평을 사들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봉사일기엔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한다. 제가 가난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고 싶었고, 어려울 때 같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더욱더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기록일기. 의령군 제공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의 봉사기록일기. 의령군 제공

30대 접어들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본격적인 봉사 인생을 걸었다. 새마을부녀회장으로 절미 저축 등으로 마을 수입을 늘려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사비를 들여 마을 간이상수도 설치비와 지붕개량 사업도 했다. 마을주민들은 1976년에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1985년에는 주민들이 의료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지 225㎡를 구매, 군에 기탁하며 송산보건진료소 개설 물꼬를 텄다.

50여 년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각종 단체에 쌀 등 물품 기탁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길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돈과 직접 키운 농산물을 선뜻 나눠줬다. 틈날 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말동무가 돼주고 집안 청소와 음식을 차려주기도 했다.

80세 되던 해, 고작 35kg의 몸으로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어 번 돈으로 기부를 했다. 그럼에도 “저희 집은 마을 중앙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하는 게 사방에서 다 보이는데, 일일이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평생을 헌신하고 마지막에도 ‘시신 기증’으로 떠난 공 할머니, 자녀들은 아직 부모님을 보내지 못했다. 병원에서 시신을 연구용으로 사용한 뒤 유족이 거두기까지 통상 2~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장남인 박해곤(63) 씨는 “발인을 못해 자식으로 마음이 안 좋지만, 이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진정한 천사가 하늘나라로 갔다” “죽어서도 큰일을 하시는 진정한 어른”이라며 추모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가 빼곡히 적어간 봉사기록일기. 의령군 제공 봉사왕으로 불린 공도연 할머니가 빼곡히 적어간 봉사기록일기. 의령군 제공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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