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속 같은 어둔 상황에서 젊은 문학적 발언할 것”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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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학인들 ‘무크지 쨉’ 발간
이기록 편집장 “팍팍하고 힘들지만
현실 문제 삼으며 우리 삶 말할 것”

<무크지 쨉> 제8호를 낸 이기록 편집장은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정종회 기자 jjh@ <무크지 쨉> 제8호를 낸 이기록 편집장은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청년은 어디 있는가. 문학의 미래는 어떠한가. 부산작가회의 청년분과가 꾸리는 <무크지 쨉> 제8호의 제목은 짙고 어둡다. ‘맨홀의 아우라’다. 쉽게 말하자면 부산 청년과 문학의 미래가 맨홀 속에 빠져 있다는 소리다. 지난 21일 이번 <무크지 쨉>의 편집장 이기록(청년분과위원장) 시인을 만나 부산 문학과 청년의 현재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번 <무크지 쨉>은 4년 만에 나왔다. 4년간 왜 못 냈나.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겠다. 대면 접촉이 극도로 위축됐기 때문에 자연스레 무크지 발간도 어려워졌다.” 그게 아닐 수 있다.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직책을 함부로 맡는다는 질책이 풍문 이상으로 꽤 떠도는 게 부산 문학판의 현재이기도 하다. 일할 사람이 적고, 특히 맡아도 책임감 있게 하지 못하니,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거다.

-부산 문학의 젊은 층이 더 힘 있는 자기주장을 펼쳐야 하지 않나.

“부산작가회의 경우, 회원 288명 중 50세 미만은 30~40명에 불과하고 게다가 30대는 희소하고, 40대가 대부분이다. 또 중요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무직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어엿한 직업을 가진 이는 40대 교수 두세 명뿐이다. 대부분 학원 강사나 임시직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허덕인다. 생계 해결에 곤두서 있으면서 글을 쓰고 있으니, 문학판 일을 규모 있게 추진하면서 자기주장을 모아나가기가 매우 힘든 실정이다.”

인구 노화와 일자리 부족이라는 한국 사회의 원천적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겪는 부산 상황이 부산 문학의 패기를 꺾는 큰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맨홀 속에 빠졌다’라는 자못 심각한 볼멘소리가 나오는 거다. 교수들의 문학적 역할도 크게 요구되지만, 이상하게도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면 문학판과의 이음새가 헐거워지는 추세가 갈수록 더하다.

<무크지 쨉> 제8호를 낸 이기록 편집장은 “윤동주와 김수영이 말했던 삶과 현실을 직시하는 문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종회 기자 jjh@ <무크지 쨉> 제8호를 낸 이기록 편집장은 “윤동주와 김수영이 말했던 삶과 현실을 직시하는 문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종회 기자 jjh@

-그래도 변화를 모색해야 하지 않나.

“젊은 문인들 간에 의기투합과 교류는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예를 들면 동년배 문인 4명이 사무실까지 마련해놨으나, 모이면 돈이 든다고 잘 모이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러니 어떻게 젊은 층이 자기주장을 펼쳐나가겠는가. 우리 시대는 젊은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있다.”

문제는 각자도생에 분주하면서, 문학이 공동체의 변화와,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헌신보다는 자신의 허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도 제 팔 제 흔들기 식으로, 어깨를 곁는 공감대의 토대가 엷어졌다는 거다.

-‘시대와의 고투’가 문학의 과제였던 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아니다. 우리도 문학의 존재 이유는, 작가로서의 가치는 바로 현실에 대한 저항, 문제 제기에 있다는 걸을 익히 알고 있다. 문학은 저 혼자 고귀한 것이 아니다. 윤동주와 김수영이 말했던 삶과 현실, 그것과 동떨어진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무크지 쨉>에서는 시 10명(박길숙 석민재 오성인 오윤경 이병국 이소회 이원석 이이후 이현곤 차유진), 소설 5명(김지현 박창용 서진 장미영 정재운), 평론 2명(강희철 우은진)의 필진을 짜면서 지역의 확장·연대를 위해 다른 지역 문인 4명도 참여시켰다. 박탈감과 그리움의 대상인 ‘집’을 주제 삼은 젊은 문학적 발언을 담으려 했다. 편집위원은 김미령 김종광 오선영 이현곤 정재운이다. 이기록 편집장은 “현실이 힘들어도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써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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