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크리스마스 트리, 세상을 밝히다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다. ‘아름다운 씨앗’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어느 날 꽃밭을 거닐다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에게 납치된다.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헤매지만 지하로 끌려간 딸을 찾을 리 만무했다. 상심이 한없이 깊었던 까닭이었을까. 대지의 풀과 꽃, 나무가 시들고 곡식은 여물지 못했다. 나중에야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만, 하데스가 건넨 석류를 먹은 페르세포네는 1년 중 얼마 동안은 지하세계에 머물러야만 했다. 씨앗이 땅속에 잠든 계절, 혹독한 그 겨울 말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생명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잎과 열매를 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적막한 풍경을 자아내는 계절에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처럼 사철 푸른 상록수 가지를 집안에 들이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초록빛 담쟁이넝쿨과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문에 걸어 ‘벽사진경’을 갈망했던 고대의 전통과도 맞닿는다. 반짝이는 전구와 오나먼트로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이미지는 19세기 무렵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싼 영국 빅토리아 여왕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그린 삽화가 매체를 통해 확산되면서부터다. 뒷날 이러한 풍경이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는 공공장소에 설치한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자주 접한다. 5만여 개의 전구로 장식한 뉴욕 맨해튼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점등식을 중계방송할 만큼 장관이다. 1931년 대공황시기에 설치한 이 트리는 록펠러 센터 부지 개발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도 트리가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 키이우 성 소피아 광장에 설치한 트리는 백색 비둘기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 파란색 전구로 장식했다. 크리스마스는 평화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이 노래하자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백파이프를 연주하여 크리스마스 정전(停戰)에 합의하지 않았던가.
이즈음 남포동과 해운대 거리, 백화점과 호텔, 카페마다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카메라를 꺼내 들게 한다. 이날들을 걸으면서 소박한 상록수 가지의 전통을 되새긴다. 씨앗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묵묵히 예비하는 시간. 그 시간에는 새롭게 돋아날 연둣빛 잎사귀, 붉은 꽃과 열매, 새와 벌레의 노래로 온통 소란하고 꿈틀댈 것이다. 더불어 곁사람들의 고단한 나날과 이웃들의 추운 계절을 생각한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의 참회를 통해 온기를 나누며 함께하는 이웃과 길동무의 중요성을 일깨우지 않았는가. 곧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만큼 즐거운, ‘일 년에 딱 한 번’인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