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물길은 바뀌어도 강은 언제나 흐른다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해양수도의 문화적 자존심, 부산시향
역할 막중한 새로운 상임지휘자 물색
클래식 발전에 온 힘 바치는 인물 와야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초대 지휘자 오태균과 함께 1962년에 창단되었다. 물론 1957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먼저 만들어졌고 부산은 두 번째다. 1988년 부산문화회관 개관과 더불어 국내 최초의 외국인 지휘자를 영입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대한민국 교향악단 최초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은 한국 해양수도 부산의 자존심과 같은 존재이며 시민의 얼굴이다.
지난 14일 제11대 예술감독인 최수열 상임지휘자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다. 2017년 그가 임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부산시립교향악단의 객석 점유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공연마다 거의 매진 사례를 이룬다. 취임 이후 ‘미완성 음악회’라는 타이틀로 리허설 장면을 시민에게 공개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앞선 지휘자들과 달리 주소지를 옮겨 부산에서 살 정도로 부산을 사랑한 지휘자였다. 물론 객석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제법 있었다. 그만큼 관객의 수준도 높아진 것이다.
지휘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지역사회나 예술단을 위해 지휘자가 해야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과거 절대주의 시대에는 시민들이 지도자를 위한 존재였고 교향악단도 그를 위해 존재했다. 탁월한 ‘리더형’ 지도자라면 다르겠지만 대개 ‘군림형’ 지도자는 사람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고 집단의 근간을 흔들기도 한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저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는 근대 지휘법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을 듣는다.
거스 히딩크는 2000년 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2001년 1월 1일 공식 취임했다. 그리고 그가 이룬 한국 축구의 성장은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축구 감독의 덕목 중 하나는 선수를 고르는 눈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소통 창구 역할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시립 오케스트라에도 그런 지휘자가 필요하다. 인맥이나 연줄이 아닌 성실성과 능력으로 단원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 아울러 단원들의 연습 환경이나 처우 개선을 위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하는 지휘자라면 좋겠다.
11월 13일, 대구에 살던 줄리언 코바체프 전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세상을 떠났다. 2014년부터 9년간 대구시향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대구를 사랑했고 대구에 클래식 열풍을 일으켰다. 퇴임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구에 머물렀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라는 자리가 그냥 한 번 찍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갈 곳 없는 사람이 누군가를 안다는 이유로 슬쩍 머무르는 자리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부산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떠날 사람보다 부산 클래식 발전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영원한 ‘고3’이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이 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듯이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도 꾸준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예술단체가 과거의 명성만 믿고 연습을 소홀히 하고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관객을 속이는 것이다. 완벽함에 가장 가까운 연주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고 했다. 새로 맞이할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는 부산 예술문화의 상징인 부산시립교향악단을 더 견고히 다질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이기를 기대한다. 예술가라는 직업군이 가진 매너리즘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단원들을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1월 대만 출신인 뤼 샤오지아의 객원 지휘로 정기연주회가 끝난 뒤 단원들이 만족하는 표정을 객석에서 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협연자까지 같았던, 8년 전 11월에 부산시립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했던 데이비드 로의 연주가 떠올랐다.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를 역임했던 로가 연주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그동안 부산문화회관은 재단법인으로 운영 체계가 바뀌었고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악장을 비롯해 젊은 단원들로 보충되었다. 사람은 떠나도 산천은 의구한 법이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한 음악 드라마 첫 회에서 명대사를 들었다. “지휘자는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는다.” 그렇다. 임기를 채운 지휘자가 그 지역을 떠나도 지역의 오케스트라는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연주자들이 하나둘 떠나도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영원할 것이다. 물길이 바뀌어도 오래된 강은 영원히 흐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