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문 뒤 여성의 고단한 삶이 있다
박자현 ‘가게 안 작은 방’
28일까지 디오티 미술관
성매매 집결지·주변 기록
허름한 집의 작은 문이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밖을 보지 못하도록 쇠기둥으로 막힌 창문, 화려한 시트지로 가려진 작은 방은 일상의 삶과 분명히 다른 뭔가가 숨어 있다. 펜으로 점을 찍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에선 작가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박자현 작가의 개인전 ‘가게 안 작은 방’의 전시 풍경이다.
박자현 작가는 2017년부터 부산, 대구, 서울의 성매매 집결지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입주작가로 지내며 대구 중구에 있던 자갈마당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성매매 집결지에 관심이 가게 된 건 사실 그 이전부터였다.
“미남 로터리 근처에 살았는데 그때 로터리 옆에 속칭 ‘방석집’이 있었어요. 그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고요. 규모가 컸던 그곳이 어느 날 폐업되더라고요. 여성의 인권 때문이 아니라 경제 논리 때문에 밀려나는 거였죠. 마음이 무거웠어요. 여전히 그 여성들은 고단한 세상에 밀려 쪽문 뒤에 어딘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박 작가는 부산 백양대로 아래 상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예전 부산으로 피란 온 여성들이 갇혀 일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찾았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살던 쪽방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2년 전 백양대로 그림으로 한 차례 전시를 열었고, 이후 백양대로 작업과 더불어 완월동, 미아리, 영등포 등 다른 성매매 집결지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성매매 집결지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일반적인 집의 문 크기가 아니었어요. 너무 낮고 좁고 작은 문을 가진, 성냥갑 같은 집의 환경이 열악했어요. 여성들은 문이 있어도 자유롭게 나올 수 없었죠. 창문이 없거나, 화려한 시트지로 가려져 있었어요. 내부의 삶과 폭력까지 가려지는 공간이죠. 거기서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누나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어요.”
작가의 사명감으로 뛰어들었지만, 이 작업은 쉽지 않았다. 현장을 일일이 찾아가는 것부터 밑그림을 위해 사진을 찍다 보면 업주들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작가는 쪽문 뒤 여성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자신 역시 고단한 노동으로 그림을 채워나갔다고 한다.
한 점 한 점의 그림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 이 전시는 몇 바퀴를 돌며 한참을 둘러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선 그림뿐만 아니라 60대 여성 생계부양자가 직접 쓴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도 함께 만날 수 있다. 해방 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이야기부터 35년 전 일본인 관광객과 온천장에 관한 이야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겹게 버티던 삶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맞춤법이 모두 틀린 어색한 문장들이지만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최근 부산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짓기 위한 건축 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120년여 만에 완월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개발 계획에는 정작 그 지역에서 고단한 노동을 버틴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고려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막대한 재개발 이익은 성매매를 가능케 한 일부 건물주와 업주에게 돌아가고 쪽문 뒤 여성들은 어디로 밀려나게 될까. 박 작가 그림 속 작은 방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다.
전시는 28일까지 디오티 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