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지 베들레헴, 올해는 ‘블루 크리스마스’
전쟁 여파로 침울한 성탄 행사
화려한 점등식 대신 평화 행진
기독교 대축일인 성탄절을 맞아 세계 각지는 트리를 빛내는 조명들로 가득 찼지만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은 석달 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으로 침울한 분위기다.
24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해마다 성탄절이면 화려한 트리 점등식에 더해 연주자의 퍼레이드까지 떠들썩한 축하 행사가 열린 베들레헴이지만 올해는 대부분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불과 70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2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까닭이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여정을 기려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까지 이어지는 가톨릭 총대주교의 행렬도 규모가 크게 줄었다. 통상 30명에 가까운 보이스카우트들이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총대주교와 함께 시내를 돌던 것과 달리 소수의 대원이 악기를 연주하는 대신 평화를 비는 성경 구절과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묵묵히 행진하기로 했다.
전쟁의 여파로 긴장이 높아지면서 외부 방문객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던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동굴과 탄생을 기념하는 성당에는 몇몇 기자와 소수의 순례자만 있다. 해당 교회 관리인 니콜라 하두르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거의 매일 폭격 소리를 듣게 된 레바논 남부도 비슷한 상황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레바논 남부 국경에 있는 기독교도들의 마을 클라야는 성탄절 즈음이면 외국에 사는 가족과 친인척들이 돌아와 활기를 띠었지만, 올해는 마을 인구의 60%만 남아있다. 해가 진 뒤에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조차 보기 힘들다.
가자지구에 가족을 둔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을 앞두고 더 심란해진 마음을 다잡고 있다. 며칠 전 가자지구에 있는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칼리 사예는 “(가자지구 교회로 피신한 부모와 자매, 형제 등 가족)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음식이나 물은 있는지, 굶주리는 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유엔개발계획(UNDP)은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인근 폭격으로 UNDP 구호 담당 직원 이삼 알무그라비와 아내 라미아(53), 자녀 5명, 이들 대가족까지 70여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