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우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피해자 ‘인정’ 없으면 의료비 못 받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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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부산시 의료비 지원 기준 달라져
최소 20명가량 의료비 지원 못 받을 전망

부산시가 지원 대상 기준을 바꾸면서 내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일부가 의료비 지원을 못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생존 피해자들. 부산일보DB 부산시가 지원 대상 기준을 바꾸면서 내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일부가 의료비 지원을 못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생존 피해자들. 부산일보DB

인권 유린이 벌어졌던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 일부가 내년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부산시 의료비 지원 대상 기준이 바뀌기 때문이다.

26일 부산시에 따르면 내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의료비 지원 사업’(이하 의료비 지원 사업) 대상은 진실화해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하면서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이에 따라 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종합지원센터에 피해 신고를 접수한 사람이 지원 대상이었던 기존에 비해 지원 범위가 줄게 된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의료비 지원 사업을 본격 시행했다. 고령이 된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필요성과 더불어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당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부산의료원에서 치료 받으면 부산시가 1인당 연간 500만 원까지 피해자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원했다.

의료비 지원 사업은 피해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올해 부산시는 의료비 지원 사업으로 예산 2억 원을 편성했는데, 지난 10월 예산이 모두 조기 소진될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 부산시에 따르면, 올해 의료비 지원 사업으로 치료 받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124명이다.

의료비 지원 사업의 높은 인기와 별개로 내년부터 지원 기준이 바뀌면서 일부 피해자는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모임 측은 “진실화해위로부터 피해자 자격을 인정받고 부산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10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최소 20명가량 피해자가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부산시는 진실화해위원회 등 정확한 피해 근거가 마련된 피해자만 의료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민생노동정책과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도의적 차원에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모든 피해자에게 지원한 것”이라며 “형제복지원 피해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인 진실화해위원회 결과에 따라 명확하게 피해를 본 사람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조사하는 진실화해위 활동이 내년 5월 종료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아직 피해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까 불안해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피해자 자격을 얻지 못하면, 이번 의료비 지원 사업과 같은 후속 대책에서 번번이 제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화해위 측은 위원회 조사 활동을 1년 연장할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기본법상 조사 기간 만료일 3개월 전에 대통령 및 국회에 보고해 ‘1년 이내의 범위’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 활동 연장과 관련해서 대통령실에 보고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가범죄 피해자를 조사하는 데 기간이 설정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는 “아직도 국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피해자가 많다”며 “국가폭력 피해자를 찾는 조사 기간을 한정한다는 게 잘못된 것이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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