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김해 240㎞ 낙남정간 종주 담은 초유의 시집
김보한 시인 ‘낙남정간을 읽다’
2년 간 완주, 자료 수집에 5년
백두대간 10년 완주 이어 실행
그 행보 ‘전무한 문학사적 사건’
경남 통영의 김보한(68) 시인은 ‘지면 위에 산줄기를 일으켜 세우는 시인’이다. 그는 10년에 걸쳐 백두대간을 완주하면서 이미 세 권의 시집·시조집을 냈고, 다시 2년에 걸쳐 낙남정간을 완주하고 이번에 시집 <낙남정간을 읽다>(실천문학사)를 냈다. 시와 시조를 같이 쓰는 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이다. “실제 2년간 완주 뒤에 자료 수집과 재답사를 하면서 5년이 더 걸렸어요.” 그 기간은 낙남정간을 온전히 몸속에 넣은 시간이다. 몸속에 들어가야 이윽고 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낙남정간에 대한 구체적 시편(56편)을 생산한 초유의 시집이다. 더러 백두대간을 쓴 시와 시집은 있지만 낙남정간을 쓴 것은 아예 없다고 한다. “(그의 시 작업은)지용과 노산의 산행 시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경로와 행보의 총체에 있어 전무한 문학사적 사건”이라는 것이 구모룡 평론가의 평이다.
낙남정간은 국토 최남단, 특히 경남에 드리운 산줄기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고암나루까지 총연장 240㎞에 이른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산줄기는 하동 사천 진주로 가면서 점차로 부드러워지다가 다시 고성에 와서는 지맥이 세어집니다. 그것이 무학산, 신어산까지 함안 창원 김해를 휘감거나 관통하면서 굽이굽이 경이롭고 튼실한 맥으로 이어지죠.” ‘낙남정간을 불끈 부활시킨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무량산’, ‘감개무량한 산이네’. 고성에 와서 세지는 지맥의 무량산은 통영지맥의 분기점으로, 거제지맥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그는 왜 대간과 정간을 ‘온통 살아가게’ 됐을까. “시가 문제 삼던 ‘시대와 현실’의 커다란 공백을 ‘생활 시’가 온전히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다와 산, 큰 스타일의 시로 나아가게 됐지요.” 그는 해양문학에도 매진했는데 생계 때문에 부산 생활을 청산하고 통영 풍화리로 귀향해 가두리 양식을 수년간 하면서 ‘문학’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산행의 경우, 무엇보다 쓰린 인생 문제와 심각한 건강 문제가 겹쳐, 살기 위해 시작했는데 그 산행길이 결국은 백두대간과 낙남정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0년에 걸친 백두대간 구간 단독완주로 그는 살아났고, 그 덕에 낙남정간까지 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길의 끝이 인생길의 끝인지 궁금하오 꼬불꼬불 내리뻗은 저 길이 인생의 끝인지 의문스럽소, 저 길이 확실히 어딘가 그립다오, 길이여 안녕, 운명길이 더 힘차게 뻗길 합장한다오’(‘오곡재’ 중에서). 두 손 모은 그 합장 끝에 삶의 길이 연장되면서 낙남정간의 시가 탄생한 것이다.
그의 낙남정간 산행은 봉우리뿐 아니라 고개, 그리고 역사 전설 신화, 삶에 대한 성찰 해탈 갈증 등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냉정고개에서는 삶의 초연함, 신어산에서는 금관가야 신화, 불모산으로 지맥이 분기하는 용지봉에서는 후삼국 호족 김인광을 불러낸다. 동학 얘기도 있다. ‘양이터’는 동학동민운동 때 ‘양씨와 이씨의 깔깔한 생명들이 피난처’이고, 또 ‘방하고지’는 ‘속세의 집착을 버리고’ 방하착(放下着)하는 곳인데, 그러면 ‘끝내 잇닿는 곳 돌고 돌아 넘는 재 돌고지재’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 구비 저 구비를 돌고 돌아 넘는 게 삶이라는 소리다.
시인의 아픈 노래 중 ‘나의 나무에게’란 시가 있다. ‘저 산 나무’를 생각하며 부르는 시인데 시인은 산에 오르면 저쪽 산의 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그리워한다. 시인이 육체적으로 낳은 ‘나무’가 저 산 나무이다. 늘 가슴에 맴도는 나무라고 한다.
시인은 “낙남정간의 참 많은 구간이 훼손돼 있었다”며 “정간의 예전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환경을 복원·재생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바람이 이번 시집에 담긴 큰 뜻”이라고 했다. 낙남정간은 ‘낙남정맥’으로 불렸으나, 지난 2021년 조선 산맥을 1대간 2정간 12정맥으로 정리한 <산경표> 필사본의 발견 이후 통설의 명칭이 되고 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