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도 윷으로 척자점을 쳤다
한국인의 고유신앙:영등·수목·칠성 / 김준호
윷판, 북두칠성 운행 원리 본떠
운수·전쟁 여부 묻는 점복 도구
고유신앙 근원 찾기 흥미진진
오래전부터 가졌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윷놀이는 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정초에만 기한을 정해서 하는 것일까. 바둑, 장기, 고스톱, 포커 등 유사 종목을 살펴봐도 기간 한정 게임은 윷놀이밖에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더니 <한국인의 고유신앙:영등·수목·칠성>에 답이 있었다. 윷놀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윷놀이는 윷을 던져 나오는 괘를 보고 집단의 한 해 운수, 농사의 풍흉, 전쟁 여부 등을 묻는 고대부터 전해진 점복 도구였다는 것이다. 윷을 이용한 ‘척자점(擲字占)’의 생생한 기록이 놀랍게도 <난중일기> 여러 곳에 등장한다. 장군에 대해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순신이 점을 친 것을 현대의 시각을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녕이 목적이었고 그가 친 점은 점사가 예측한 것처럼 적중했다.
윷놀이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변수가 많아 결과를 알 수 없다. 모호성으로 돌고 도는 우리네 인생사와 너무 닮아 있다. 한동훈 장관이 법무부 장관직을 사퇴하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자리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이것이 ‘도 아니면 모’의 정치적 승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한 장관에게 ‘백도’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해야지 ‘모’를 내겠다고 욕심부리다간 실수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윷놀이는 이처럼 우리 일상에서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혹시 윷판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동서남북에 배치된 북두칠성의 모습, 그 천구를 한 개의 방과 28개의 밭으로 도식화한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윷판이 무조건 사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공장에서 만든 윷판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인쇄나 가공에 편리한 네모난 윷판이 널리 퍼졌지만, 예전에는 둥그런 윷판이 더 많이 쓰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한 청동기 시대에 만든 윷판 모양의 성혈(星穴)과 연관이 있다.
한국인은 어느 별자리보다 북두칠성을 굳게 믿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새벽마다 칠성 기도를 올렸고, 북두칠성 모양의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무덤 뚜껑 바위에 북두칠성을 새겼고, 북두칠성의 운행 원리를 본뜬 윷판으로 칠성신에게 길을 묻는 점을 치다, 윷놀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고유 신앙인 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윷놀이 하나로 이처럼 기막히게 풀어내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김준호를 국악인, 명창, 연예인으로만 생각하면 반만 아는 것이다. 그는 부산대에서 구비문학과 민속학을 공부했다. ‘공부하다 죽어라’를 평생 신조로 삼고 틈만 나면 세상을 떠돌며 풍속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인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민간에서 불리던 신앙과 관련된 노래를 직접 채록해 수록한 것도 만날 수 있다. 덕분에 우리의 대표적인 고유 신앙인 영등 신앙·수목 신앙·칠성 신앙의 근원과 우리 삶과의 연관성을 알게 되었다.
1부 영등 신앙에서는 영등 할미를 비롯해 최고의 여신이었던 마고 할미까지 여신 이야기가 나온다. 마고의 마는 ‘왕, 고귀한 자, 큰 여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마마, 마님, 마누라, 엄마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그래서 마누라가 무서운 존재구나. 소나무는 성주신의 집으로 살아서도 대접받고 죽어서도 대접받는 한국인의 조상 나무였다. 하지만 90년대까지 존재했던 성주단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團地)를 신앙처럼 받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씁쓸하다. 영원한 동반자 손심심이 그림을 그렸다. 민속 박물관급 부부의 역작이다. 김준호 지음/손심심 그림/학이사/240 쪽/1만 7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