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 위해 달려온 10년
‘노량’ 박스오피스 1위
다큐·‘7년 전쟁’ 차기작
무려 10년이다.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3부작을 위해 영화 ‘명랑’(2014)부터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까지 달려온 시간이다. 사전 준비 기간까지 고려하면 몇 년이 더 추가되니 사실상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을 위해 영화 인생 대부분을 할애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울 때마다 ‘난중일기’를 본다”며 “이상하게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개봉한 이 영화는 공개하자마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선두를 달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개봉 5일 만에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어 주목을 받았다. 영화계에선 전편인 ‘명량’이 1761만 명, ‘한산: 용의 출현’이 726만 명을 동원해 이번 작품이 쓸 기록에도 관심이 높다.
김 감독은 “장군님께 부끄럽지 않게 잘 만들어서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3부작을 완성할 수 있던 건 ‘천행’(天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작품들이 왜 존재해야 하고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명량’ 때 개봉을 못 할 뻔했어요. 당시 세월호 참사가 있었기 때문에 바다가 주요 무대인 이 영화를 공개하는 게 맞냐는 말이 있었거든요. ‘한산’과 ‘노량’을 찍을 때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라 촬영 자체가 연기될 뻔했고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영화를 제 시기에 만들고 개봉할 수 있던 건 운이 좋았던 덕분입니다.”
이번 작품은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접어든 1598년 11월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수군과 연합해 왜군을 섬멸한 노량대첩을 그렸다. 이순신 장군은 배우 김윤석이 연기했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이 용장(勇將)이라면 ‘한산’에선 지장(智將)으로, 이번엔 현장(賢將)으로 그려졌다. 김윤석은 탁월한 표정 연기를 통해 현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줬다. 김 감독은 “김윤석 씨는 현장 이순신 장군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배우”라며 “지혜롭고 후대를 생각하는 장군님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100분에 이르는 치열한 해상전 장면은 백미다. 이 장면은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강원도 강릉의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 초대형 규모의 실내 세트장을 지어 촬영했다. CG(컴퓨터 그래픽)에만 25개 업체 800명이 참여했다.
김 감독은 “‘명량’을 할 때보다 모든 것이 발전했다”며 “기술적으로도 자본적으로도 그땐 불가능했던 것들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엔 CG도 그렇지만, 사운드 디자인이 아주 힘들었다”며 “두 시간 반짜리 오케스트라 연주를 이끄는 지휘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사운드의 균형과 길이, 음색, 대비 같은 걸 정말 신경 많이 썼어요. 홀로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을 보여주려면 사운드의 역할이 중요했거든요. 마지막까지 저를 힘들게 했던 부분이죠.”
‘이순신 3부작’은 끝을 맺었지만,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 이야기는 계속된다. 김 감독은 ‘이순신 3부작’의 촬영 후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와 임진왜란을 다룬 8부작 시리즈 ‘7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7년 전쟁’에서는 당시 조선과 왜, 명 사이의 정치 외교를 본격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김 감독은 꿈속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한 번 쓰다듬어 주시면 안 되냐고 물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장군님한테 폐를 끼치진 않은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해 만든 영화를 완성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