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대장경 판각지 관련 예산 ‘싹둑’… 성역화 사업 물건너가나
홍보 조형물·용역비 1억 원 전액 ‘삭감’
불교계 “그동안 노력 부정…이해 안 돼”
남해군, 내년 추경 통해 예산 확보 계획
세계 기록문화유산인 합천 ‘고려대장경’을 경남 남해군에서 판각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남해군은 대장경 판각지 성역화 작업에 나서겠다는 생각인데, 군의회에서 내년도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남해군과 남해군불교사암연합회 등에 따르면 남해에서 고려대장경 판각 흔적이 처음 발견된 건 지난 2012년이다. 고려대장경 총경록에 판각작업을 주도한 고려분사도감이 남해에 있었고 대장경 제작을 지휘한 정안이 남해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확인되면서 전 선원사지와 전 관당성지 등에 대한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실제 발굴현장에서는 대장경 판각 시기인 12~13세기 당시 자기와 기와 유물을 비롯해 당시 고관이나 귀족 등 상류사회에서 제한적으로 유통된 화폐, 명문 은병이 발견돼 남해 판각지 가설을 뒷받침했다.
이후 계속해서 발굴과 연구가 이어지면서 남해가 고려대장경 판각지였다는 주장은 갈수록 힘을 얻었고 경남도 역시 전 선원사지와 백련암지를 대장경 판각지로 인정한 상태다. 이에 군은 판각지 성역화 작업에 착수했고 내년 예산에 관련 사업비를 편성했다.
하지만 성역화 작업은 첫삽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내년에 예정된 고려대장경 관련 사업은 4개다. 이 가운데 대장경 관련 단체를 지원하는 보조사업은 판각보존회 판각 체험활동과 화방사 기념법회 등 2개로, 각각 1400만 원씩 예산이 지원된다.
올해는 각각 1600만 원이었는데 예산 부족으로 군이 200만 원씩 줄였다. 그나마도 해당 단체들이 자체 예산을 들여 예산 부족분을 감당하겠다고 밝혀 일부 삭감에 그쳤다.
문제는 군 자체 사업 2개다. 홍보 조형물 설치비 5000만 원과 대장경 판각지 세부사업 발굴 위한 용역비 5000만 원이 편성됐는데, 군의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군은 성역화 사업을 앞두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홍보와 사업 발굴에 나설 예정이었다. 특히 그동안 고현중학교 폐교 부지를 대장경 판각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부지 선정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때문에 관련 용역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전액 삭감된 것이다.
군의회 관계자는 “그동안 진행됐던 대장경 복원과 판각지 관련 사업이 큰 성과 없이 반복돼 왔다. 내년부터 긴축 재정이 진행되는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불교계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남해군이 대장경 판각지임을 밝히기 위해 군과 불교계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꾸준히 성과를 냈는데, 이를 군의회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학계에서 대장경 판각지가 남해군임이 어느 정도 받아 들여지고 있는 만큼 관련 홍보와 관광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이 계속해서 삭감될 경우 군의회 항의방문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남해군불교사암연합회장인 성각스님은 “그동안 성과가 없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발굴이 진행됐고 관련 심포지엄과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고려대장경 판각지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일단 내년 추경에 다시 예산을 올려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생각이다. 군 관계자는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중요하다. 군의회에 대장경 판각지 성역화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내년 추경에는 반드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