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태양의 서커스
고대 로마제국은 시민권을 가진 자에게 매달 한 달 치 분량의 빵과 함께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티켓을 배급했다. ‘빵과 서커스’, 일종의 무상 복지 정책이었달까. 콜로세움에선 전차 경주나 검투가 벌어졌는데, 이런 공간을 ‘키르쿠스(circus·원형)’라 했다. 서커스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빵과 서커스’는 위정자가 시민들의 관심을 바깥으로 돌리는 우민화 정책을 상징한다. 고대가 아니라 현대에도 얼마든지 목격되는 현상이니 그 역사가 유구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커스는 근대의 것이다. 영국의 곡예사인 필립 애스틀리라는 사람이 1770년 런던에 세계 최초의 서커스장인 원형극장을 건립했다. 혼자 말을 타고 묘기를 부리다가 점차 다른 곡마사, 줄 타는 사람, 공중 곡예사, 광대들로 쇼가 확대됐다. 서커스는 19세기 들어 중심 무대가 미국으로 바뀌면서 사업화, 대형화의 양태로 변신한다.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은 이 영역을 주무른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슬로건으로 내건 ‘지상 최대의 쇼’는 마술과 곡예, 동물 공연을 아우르며 1884년부터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당시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몸과 생명의 권리가 중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서커스를 보고 있으면, 한편 경이로우면서도 한편 왠지 모를 애잔함을 느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침체에 빠진 서커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공연이 있다. 바로 1984년 캐나다에서 출발한 ‘태양의 서커스’. 동물 묘기는 제외하고 오직 인간의 몸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국적의 곡예사·광대·배우·가수·연주가들이 모여 현란한 곡예와 함께 무용·발레·체조·연극·마임 등을 혼합한 몸동작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07년 첫 내한 무대 등 총 8차례의 공연을 선보였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새해 1월 13일부터 펼쳐진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야외주차장에 초대형 텐트가 세워질 예정인데, 다음 주 후반부터 무대 설치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대사 없이도 놀라운 소통을 안기는 핵심은 몸짓에 있다. 몸은 거짓 없는 정직과 진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이 전 세대가 공감할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부산 시민에게 영화·영상이 줄 수 없는 날것의 감동을 어떻게 선사할지 자못 궁금하다. 티켓 판매 실적으로 볼 때 흥행의 호성적과 관광객의 유입 증가도 예상된다. 여러모로 기대를 모으는 무대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