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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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1950∼ )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 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 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시집 〈포옹〉(2007) 중에서


‘산산조각난 유리’만이 굴절과 산란을 통해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이룬다. 역경과 시련을 거쳐야만 구원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하늘은 큰 사랑을 베풀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시련을 내린다. 그렇게 보면 ‘빛의 고통’이 빛의 축복인 셈이다.

예수님은 산산조각난 몸을 가짐으로 인해 인류를 구원하셨다. 조각난 몸은 상처와 고통이지만 지고한 신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과정. 그것은 물질의 몸을 부수고 영혼의 몸을 다시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이다. 더 큰 세계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계로 굳어진 자신의 물질성을 부숴 조각낼 필요가 있다. 하여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말은 얼마나 큰 영성의 획득이자 축복의 방언일 것인가! 산산조각 형상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 신성의 표상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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