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드 업' 속도를 높여라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동영상 플랫폼 '틱톡' 로고. 부산일보DB 동영상 플랫폼 '틱톡' 로고. 부산일보DB

최근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는 흐름 중 하나가 '스페드 업(Sped Up)'이다. 흔히 '가속하다'라는 뜻을 가진 '스피드 업(Speed Up)'의 과거형 표현으로 주로 특정 곡의 속도를 원곡보다 125~150% 빠르게 바꾼 '2차 창작물'을 일컫는다. 노래의 재생 속도만 바꿨을 뿐인데, 듣는 입장에서는 곡의 템포가 바뀌고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까지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발표된 곡에서 느끼지 못한 분위기를 낸다.


물론 2000년대 초 해외에서는 속도를 빠르게 변형시킨 음악을 '나이트코어(Nightcore)'라고 부르며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소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10년대 후반부터는 틱톡(TikTok)으로 대표되는 숏폼(short-form) 콘텐츠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평범한 사람도 스마트폰 하나로 자신이 선택한 음악을 스페드 업 버전으로 변형한 뒤 직접 찍은 영상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덕이다. 여기에 빠른 호흡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이용자들의 취향까지 맞아떨어지면서 과거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미디어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챌린지(Challenge) 열풍과 함께 수년 전에 발표된 음악이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핫 아이템'으로 소환되거나 무명의 아티스트가 갑자기 인기를 얻는 일도 생겼다.


2022년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한 댄스 장면에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2012년 노래인 <Bloody Mary(블러디 메리)>가 빠른 버전으로 삽입돼 패러디 되면서 원곡이 발표 11년 만에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했다. '웬즈데이 챌린지' 유튜브 캡처 2022년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한 댄스 장면에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2012년 노래인 <Bloody Mary(블러디 메리)>가 빠른 버전으로 삽입돼 패러디 되면서 원곡이 발표 11년 만에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했다. '웬즈데이 챌린지' 유튜브 캡처

국내에서는 보이그룹 '엑소'가 2013년에 발표한 노래 <첫 눈>이 얼마 전 대형 음원사이트에서 발매 10년 만에 일간차트 1위를 차지하는 역주행으로 화제가 됐다. 원곡은 잔잔한 템포의 곡이지만 한 틱톡커가 스페드 업 버전과 함께 댄스 영상을 선보였는데 이게 입소문을 제대로 탔다.

올해 2월 발매된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Cupid)>는 신인 가수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 사례로 손꼽힌다. 틱톡에서 스페드 업 버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뒤로 빌보드 차트 '핫 100'에도 진입해 25주 연속 머무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K팝 걸그룹 중 가장 오래 핫 100에 머무른 기록이기도 하다.


'스페드 업' 덕분에 원곡까지 주목을 받자 뮤지션들도 팬 서비스를 겸해 해당 곡의 속도를 직접 높여 음원으로 내놓는 경우도 등장했다. 올해 2월에는 원맨 밴드 '허밍 어반 스테레오'가 일명 '나문희의 첫사랑 챌린지'로 알려진 일렉트로닉 곡 <바나나 쉐이크(Banana Shake)>를 원곡 발표 19년 만에 스페드 업 버전으로 선보였고,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 역시 9년 전 발매했던 노래 <AEAO(에아오)>' 음원을 지난 8월 속도를 다르게 바꾼 두 가지 버전으로 재해석해 발매했다. 최근에는 스테이시, 에스파, 르세라핌 등 요즘 K팝 대표 주자로 떠오른 그룹들이 아예 처음부터 신곡 발표와 함께 스페드 업 버전을 거의 동시기에 공식 리믹스 곡처럼 선보이고 있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