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남해안 겨울 진객…어민도, 상인도, 소비자도 울상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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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대구·통영 물메기 최악 어획난
대구 10분의 1·물메기 반토막 수준
한류성 어종 이상 고온 후유증 추정
대구탕·메기탕 한 그릇 2만 원 부담

27일 오전 통영 서호시장 판매대에 진열된 물메기(왼쪽)와 대구. 김민진 기자 27일 오전 통영 서호시장 판매대에 진열된 물메기(왼쪽)와 대구. 김민진 기자

‘대구 한 마리 13만 원, 대구탕 한 그릇 2만 원.’

올겨울 남해 최고 별미로 손꼽히는 대구와 물메기 맛 보기가 쉽지 않다. 여름내 기승이던 이상 고온 후유증에 남해안 제철 생선들이 자취를 감춘 탓이다. 극심한 어획난에 몸값까지 치솟으면서 잡는 어민이나 파는 상인, 사는 소비자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7일 거제수협에 따르면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인 외포항 위판장에서 12월 거래된 대구는 4000여 마리다. 역대 최악이라던 지난해 6만 5000여 마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맘때면 그날 새벽 잡은 대구로 넘쳐나든 위판장은 아귀나 광어 같은 엉뚱한 어종들 잔치판이 됐다. 대구는 이들 틈에서 겨우 한두 마리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수협 관계자는 “심할 땐 하루 20마리가 안 되는 날도 부지기수”라고 귀띔했다. 귀해진 만큼 값은 갑절 이상으로 뛰었다. 이달 평균 낙찰가는 마리당 6만 1500원 꼴로, 작년 1만 9000원의 3.2배다. 크고 실한 놈은 10만~13만 원까지 부른다.

2021년 이맘때 거제수협 외포위판장 모습. 새벽녘 어획한 대구로 가득찼다. 부산일보 DB 2021년 이맘때 거제수협 외포위판장 모습. 새벽녘 어획한 대구로 가득찼다. 부산일보 DB

어민들은 어획난 주범으로 고수온을 지목한다. ‘겨울 진객’으로 불리는 대구는 찬 바다를 좋아하는 한류성 어종이다. 낮은 수온을 찾아 이동해 러시아 캄차카반도 등 북태평양 근해에서 살다 산란기가 되면 태어난 해역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주 산란지가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 사이 진해만이다.

어민들은 12월부터 금어기가 시작되는 이듬해 1월 16일 전까지 대구를 잡는다. 관건은 수온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대구를 맞기 위해선 바닷물 온도가 12도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달 중순까지 남해안은 15도를 웃돌았다. 한파가 몰아친 최근에도 13도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고수온이 대구가 회유하는 것을 막고 있는 셈이다.

경남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대구 자원 자체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 동해안과 남해안 수온이 상승하다 보니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했다.

27일 오전 통영 서호시장에서 판매 중인 물메기. 어획난으로 값이 오르면서 마리당 4만 원선에 팔리고 있다. 김민진 기자 27일 오전 통영 서호시장에서 판매 중인 물메기. 어획난으로 값이 오르면서 마리당 4만 원선에 팔리고 있다. 김민진 기자

물메기도 마찬가지다. 통영수협 자료를 보면 이달 들어 조합 공판장을 통해 유통된 물메기는 1만 1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만 8000여 마리가 잡혔었다. 반대로 단가는 kg당 1만 5000원에서 2만 6000원으로 1만 원 이상 올랐다. 물메기 역시 한류성 어종이라 고온 환경에서 제대로 산란을 못했다는 게 어민들 생각이다. 실제 남해안 수온이 적정 수준을 유지했던 5년 전만해도, 경남권 물메기 최대 산지인 추도에선 소형 통발어선 한 척이 물메기 100마리 정도는 거뜬히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주민이 잡은 걸 통틀어도 하루 100마리가 될까 말까다.

생물 생산량이 줄면서 이를 원료로 하는 건메기 위판은 5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건메기는 12마리를 묶어 1축 단위로 위판한다. 추도산 진품은 1축에 20만 원을 호가한다. 2009년 경남에서 처음 건메기를 취급한 통영수협은 매년 12월 중순이면 경매를 개시하다 2018년 이후 매물이 없어 위판을 중단했다.

수협 관계자는 “도통 안 잡히다 보니 물메기 조업을 포기하고 잡어 잡이로 전향한 어민도 상당수”라며 “건메기는 전량 주문 생산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27일 통영 한 식당에서 2만 원에 판매 중인 물메기탕. 김민진 기자 27일 통영 한 식당에서 2만 원에 판매 중인 물메기탕. 김민진 기자

식당도 속이 타들어간다. 원재료 값이 오르니 요리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다. 대구탕, 물메기탕 한 그릇이 2만 원 언저리다. 특히 물메기는 한 마리 손질해 끓이면 많아야 3인분 정도라 그 이하로는 밑지는 장사다. 한 끼 식사 비용 치곤 부담스러운 가격에 손님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식당 업주는 “가격을 무작정 올릴 수도 없고 장사하는 우리도 갑갑하다”고 하소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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