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민되는' 직장 회식
미국 지사에 파견돼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 관리자가 전해 준 직장 회식 문화 차이 한 토막. 듬직한 미국인 부하 직원이 마음에 들어 더 친해질 틈을 엿보다가 이만하면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회식을 제안했다. 뜻밖에 당황한 표정이 돌아왔다. “업무가 끝났는데 왜 직장 상사와 저녁을 먹어야 하느냐”는 반문이었다. 그에게 퇴근 후 시간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자 가족을 위해 남겨 둔 성역이었다.
일본 문예평론가 후쿠다 가즈야는 회식 문화가 몰개성적이어서 경계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본인의 취향은 감춘 채 혼자 있기 싫어서, 혹은 두려워서 무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쓰럽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면 음식에 손대지 말고 회식 후에 혼자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먹으라는 초강수 훈수까지 뒀다. ‘혼밥’을 하되 먹는 행위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를 찾기 때문이라고. 함께 먹기 전에 혼자 잘 먹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키라는 취지다.
최근 직장인 상담 단체 ‘직장갑질119’에 직장 송년회를 둘러싼 상담 사례가 쏟아졌다. 상사가 인사 불이익을 암시하며 회식 참석을 강요했다는 고발 사례가 여전히 많았다. 직장 회식은 폭탄주와 건배사라는 상징적인 의례를 통해 위계질서를 확인하고 단합을 과시하는 자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장 회식에 불참한다는 것은 왕따 혹은 사회생활 포기를 각오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고 개성을 중시하는 MZ 세대가 등장하면서 회식 풍경은 바뀌고 있다. 올 연말 시내 식당가와 주점에 특수가 실종됐단다. 직장인들이 송년회를 줄이고 오찬으로 대체하거나 문화 공연 관람으로 바꾸는 추세여서 그렇다. 사실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술 자리가 고민이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가는 시대에 뒤처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MZ 세대끼리는 제각각의 취향대로 ‘위스키 하이볼’을 홀짝이는 걸 즐기는데 직장 회식에서 그러기 어렵다. 채식주의자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은 항상 선택지가 없어서 당혹스럽다.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직장 회식 풍경은 천천히, 그러나 확연하게 변신 중이다.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문화와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는 방향의 직장 회식 대안이 필요하다. 직장 동료 사이에는 여전히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