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소탐대실의 정치와 살신성인의 정치
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성장 동력 바닥, 경제·사회 활로 없어
불신·갈등·혐오로 한국 정치 얼룩져
총체적 난국 돌파 정치 역할 퇴행
윤석열 대통령 중점 국정 모호해
처가와 부인 불법 의혹에 눈감아
대쪽 검찰총장 이미지 실현하길
정치는 창조와 파괴의 예술이다. 정치는 없는 길도 만들고 있는 길도 달리 낼 수 있으며 기존의 길을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는 긍정의 예술이기도 하고 부정의 예술이기도 하다. 정치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창조주이자 파괴자인 두 얼굴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없는 길을 좋게 내어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는커녕 기존의 잘 나가던 길을 없애고 오히려 퇴행하는 길을 가고 있다. 정치가 차이를 표출하고 조정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차이를 증폭하고 갈등과 혐오와 자해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이 모양이니 대한민국이 갈수록 엉망이고 태산이다. 미래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 내다 버리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분명히 퇴행하고 있다. 거짓과 버티기와 뻔뻔함이 정치의 실체가 되어 버렸고, 그 결과 불신과 갈등과 혐오가 정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경제지표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성장 동력은 바닥났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긴밀한 민관학연의 산업정책과 무역정책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 속에서 개체화된 사람들은 외롭고 불안한 각자도생에 빠져 있다. 공동체를 상실한 사람들은 위태롭고,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더 위험하다. 국가안보를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한반도가 다시 한번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면서 안보는 더욱 불안해졌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을 돌파하는 일은 결국 정치의 몫이다. 공동체의 공익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일은 다름 아닌 정치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엉망이고 퇴행 중이지만, 국민이 정치를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기대와 희망을 거는 이유다.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역사에 남을 성과나 실패했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초석을 깔아 대한민국 국부의 길을 열었고, 전두환 대통령은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성과로 남겼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와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뤄냈고, 김영삼 대통령은 군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일궈냈고,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했지만 지역주의 해소와 선거제도 개혁,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 대연정을 통한 대화와 합의의 정치 추진 등 굵직굵직한 정치개혁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은 실패했지만 경제 재도약을 위한 747 공약을 추진했으며, 역시 실패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통해 보수도 평등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실패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적 동시 실현을 추구하는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이 매진해 온 일은 자신의 권력 획득과 유지, 그리고 그 권력의 유희뿐인 듯하다. 공동체의 운명과 미래를 짊어진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전략적이고 집중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상식과 정의를 세우겠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특수부 검사 출신답게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구태와 부정부패 및 나쁜 관행을 법적 정의를 통해 과감하고 깔끔하게 해소해 주기를 기대했다.
아마도 이런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면 윤 대통령은 선배 대통령들의 업적에 버금가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하다. 윤 대통령은 부인과 처가의 여러 불법 의혹에 계속해서 눈감아 버림으로써 상식과 정의를 추구하는 대쪽 검찰총장의 이미지를 스스로 내다 버렸다. 극우 정치와 냉전반공 외교안보통일 정책, 부자감세로 상징되는 기득권 경제의 고착화, 검찰 선후배와 대통령실 최측근 등 ‘진윤’들만의 끼리끼리 권력 나눠 먹기에 매몰되어 버린 지 꽤 오랜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몸을 바쳐서라도 인을 이룬다)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소탐대실이 아니라 살신성인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대쪽 검찰총장 이미지를 실현하는 것만으로도 역대 대통령들의 뛰어난 업적에 뒤지지 않을 좋은 역사적 평가를 남길 수 있는데, 왜 이리 대한민국과 자신을 스스로 계속해서 퇴행과 몰락의 길로 내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