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새해 첫 일출은 북항에서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물류 허브 넘어 새 시대 준비하는 부산항
엑스포 무산 이후 재개발 사업 차질 우려
원도심뿐 아니라 시민 전체가 순항 염원
윤 대통령도 새해 첫 행보로 부산항 찾길
이곳저곳 출입처를 돌았지만, ‘해양항만’ 분야만큼 낯선 곳은 없었다. 이전 출입했던 기관 대부분이 부족한 일자리, 낮은 출생률, 인구 유출 등 부산의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반면 해양항만 분야에서 부산은 다른 세상이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매년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 모이는가 하면, 올해 다른 산업들이 대내외 악재로 주춤할 때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부산항 신항은 기업들이 배후단지 등에 입주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형국이다. 한 항만 전문가는 이제는 부산항을 기준으로 보면 더는 ‘선진 항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부했다. 말로만 듣던 ‘글로벌 허브 도시’였다.
힘들고 어두운 부산을 대하다가 좋고 밝은 부산을 만나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산은 ‘노인과 바다’만 남을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이런 부산항이 이제는 새 시대를 준비 중이다. 2024년은 중대 분기점. 신항에서는 서컨테이너터미널 완전 자동화 항만이 본격 개장할 예정이며, 북항에서는 국내 1호 대규모 항만재개발 사업인 북항 재개발 2단계가 착공한다. 특히 북항 재개발 사업을 위해 자성대부두-신감만부두-신항 간 국내 첫 ‘컨테이너터미널 도미노 이전’이 이뤄진다. 초대형 하역장비가 해체된 뒤 바지선에 실려 부산항대교 아래를 건너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일제강점기 군사 요새로 주민과 아픔을 함께했던 부산항이 이제는 글로벌 물류 허브를 넘어 원도심을 살릴 새 도시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의 새 변화는 위기의 부산을 또 한 번 살리기 위한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부산항의 시대적 임무에 균열이 생겼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무산 이후 1단계 랜드마크 부지 입찰엔 먹구름이 꼈고, 2단계 사업도 공동 사업자들이 추가 사업비 분담 문제로 사업 참여를 꺼리는 분위기다. 실제 랜드마크 부지는 앞서 단독 입찰로 유찰됐던 때보다 업체들의 서면질의가 줄며 또다시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페라하우스 조성은 공법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해결되며 한숨 돌렸지만, 사업비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부산항만공사가 지원하기로 했다던 800억 원을 두고 공사와 부산시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해수부의 감사 후폭풍 등으로 표류했던 트램과 공공콘텐츠 사업도 다시 본궤도에 올려야 한다. 엑스포 무산에 허탈했던 원도심 주민들은 또다시 마음을 졸이고 있다.
‘북항 시대’를 그토록 외쳤던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도 구호만 있을 뿐이다. 앞서 언급된 문제들은 엑스포 유치에 관계 없이 이미 벌어졌거나, 엑스포가 무산된다면 당연히 벌어졌을 일들이다. 사전에 부산시는 공동 사업자 참여나 오페라하우스 사업비 문제 등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공론화를 통해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엑스포 유치전이 끝나자 그제야 2단계 사업타당성 검토를 통해 공동 사업자의 참여를 설득한다고 한다. 타당성 검토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리라 확신할 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랜드마크 부지도 PF(프로젝트파이낸싱)불황 속 속도만 강조할 게 아니라 업체들의 끌어당길 흥행 요소나 홍보 전략을 더 고민해야 한다. ‘엑스포 만능’에만 기대고 있기에는 북항 재개발은 부산에 너무나도 중요한 사업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일 부산을 찾아 ‘부산 이즈 비기닝(Busan is Beginning)’을 강조하며 북항 재개발,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의 현안을 완벽하게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과 범정부 거버넌스, 규제혁신 특례 지원 등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부산의 내년 ‘사상 최대’ 국비도 수월하게 확보한 듯하다. 그러나 정부는 먼저 각 국책사업이 직면한 문제부터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산 정치권도 엑스포 실패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현안을 체크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북항 재개발은 원도심뿐 아니라 부산 시민 전체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호주 시드니 달링하버처럼 항만 재개발이 침체된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침 새해를 앞두고 북항 친수공원이 시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이번 새해 첫 날은 북항에서 일출을 보며, 지난날의 아쉬움은 뒤로하고 부산항이 가져다 줄 또 다른 새 시대를 염원해보는 것은 어떨까. 윤 대통령도 재벌 총수와의 ‘떡볶이 먹방’이 아닌 시민과 함께 북항 일출을 보며 ‘부산 이즈 비기닝’을 다시 한 번 외쳐주길 바란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애썼던 부산항에도 큰 격려가 될 듯하다.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