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빛나는 생에 이르는 길, 다시 치곡이다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해마다 12월이면 어김없이 전세계 콘서트홀을 채우는 클래식 명곡이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이다. 특히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제4악장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가 유명하다. 가혹한 현실을 인간 의지로 극복한 화합의 메시지이자 빛나는 생의 환희다. 도입부는 다소 소란하고 불안하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유명한 주제 선율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전의 세 악장에서 지속적으로 암시되던 환희의 송가라는 주제가 점점 또렷해진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을 견뎌내고서야 맞이하는 찬란한 생의 국면이기에 벅찬 감동을 준다.
환희의 송가에는 독창 4명과 합창이 가세한다. 교향곡에 성악을 포함하는 것은 전통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시도였다. 이전에는 여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교향곡을 베토벤이 작품으로서의 음악으로 특화했다. 하이든의 교향곡이 100여 곡에 이르고 모차르트가 40여 곡을 남겼다면, 베토벤 교향곡은 9곡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으며, 치밀한 구조 속에 작곡가의 의식세계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내었다. 베토벤 교향곡은 그야말로 교향곡의 분기점이라 해도 좋다.
베토벤은 근대 이후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음악사에서 고전시대의 끝을 장식하고 낭만시대를 열어젖혔다. 음악적 시도는 혁신적이고 과감했다. 환희의 송가에는 아타카(attaca)라는 지시어가 붙어있다. 제3악장과 연이어 연주하라는 말이다. 분리된 2개 악장을 통합하여 큰 규모에다 대담한 표현이 가능하도록 했다. 협주곡에서는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흐름으로 진행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소통과 긴장을 경험하도록 했다. 이러한 혁신과 실험은 작곡가가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장치였다.
베토벤의 음악적 혁신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이를 ‘자발적 망명’이라 불렀다. 화해와 포용, 타협과 조화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삶의 모순을 드러내고 현실에 저항하려는 전복의 의지를 말한다. 베토벤의 말년의 양식은 세상과의 불화를 기꺼이 감당하면서도 거대한 음악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작곡가로서의 본질을 오롯이 지켜내었던 음악적 실천이다. 어디 음악에만 그칠 수 있으랴. 세상의 자잘하고 소소한 어느 것에도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다시, 치곡이다. 성즉형(誠則形), 형즉저(形則著), 저즉명(著則明), 명즉동(明則動), 동즉변(動則變), 변즉화(變則化). 거듭 되새긴다. 정성을 다하면 형태가 만들어지고, 형태가 뚜렷해지면 변화로 이어져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이 되는 과정 말이다. 세밑이다. 숱한 곡절 속에서도 치곡에 치곡을 거듭했던 모든 이들의 삶에 환희의 송가가 내내 머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