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절차탁마, 문학의 새봄을 맞다
우리 삶은 연속한다. 그 연속 위로 어떤 의미들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202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솟아오르는 그 의미를 거머쥔 이들이다. 그에 마땅한 설렘과 기쁨이 있을 것이고, 그 대신 그것만치, 아니 그 이상의 글쓰기 고투가 앞으로 주어질 것이다. 짙은 고투 속에서 삶의 의미가 더 깊어지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들에게 좋은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그 반을 성큼 접은 그들은 과연 어떤 이들이고, 어떤 각오를 하고 있을까. 올해 당선자는 20대 2명, 30대 1명, 50대 1명, 60대 1명이다. 6개 부문에서 당선자 5명을 냈는데, 이례적으로 희곡·시나리오 부문에서는 미덕과 약점이 뚜렷한 일곱 작품을 두고 숙고했으나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시 부문 당선자 김해인(본명 김래인·62·경남 양산시) 씨는 33년째 운영 중인 종합 공구 상회의 대표다. 부산 초읍동에 살다가 15년 전 양산으로 이사했다. 그의 당선작은 ‘공구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삶에 뿌리를 둔 시다. 그는 고교 문예부 출신으로 대학 사학과 시절, 곽재구의 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에서’의 마지막 두 줄을 읽고 감전돼 시의 씨앗을 품기 시작했다고. 부산 대연동에서 2년간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신춘문예에 5~6번 낙방하는 경험을 거쳐 2019년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시는 세상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인데, 쓸 게 많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제 일이 공구를 다루는 일이에요. 철을 만지면서도 감성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생계에 내몰릴지라도 우리 삶은 삭막한 것이 아니라 낭만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하루 14시간 일하는 생활을 한다고. 그는 “생활 속에 시를 찾아내듯, 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찾아내는 것”이라며 “더 열심히 시간을 찾아내면서 시를 쓸 것”이라고 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이혜숙(50·부산 동구) 씨는 증산공원 인근 부산 산복도로에 사는 주부다. 17년 전부터 출산 후유증으로, 부드러운 게 스쳐도 주체할 수 없는 통증을 유발하는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다고. 그 고통을 잊으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책, 특히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2019년 큰아들의 고교 진학 때 전기가 찾아왔다. 시조시인이 운영하는 학부모 문예동아리에서 시조를 접한 뒤, 큰아이의 엄마로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시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시의 정수가 시조에 있어요. 시적 운용을 발목 잡는다는 ‘정형의 틀’이 외려 시조의 큰 매력이에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원하는 시어를 앉혔을 때 그 희열은 말할 수 없어요. 상징·함축·중의적 시어를 찾는 시조는 삶의 어떤 비밀을 엿보는 거 같아요.” 그는 “무릎 치게 하는 감동적 시조, 위안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시조를 쓰고 싶다”며 “시조가 한류의 중심에 우뚝 섰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설 부문 당선자 조성백(32·울산시 남구) 씨는 3년간 운영 중인 삼산동 카페 사장님이다. 대학 경영학부를 다녀 회계사 시험공부를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어릴 적부터 잘하던 글쓰기 길로 20대 중반에 접어들 때 영문학 박사를 공부하던 누나의 권고와 격려가 있었다고. 신춘문예 최종심에 많이 올라가 ‘10년까지는 해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이번에 7년 만에 당선됐다. “성격·가치관이 응축돼 글이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일상적인 것에서 비일상적인 것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잊고 있었던 것을 발견한다고 할까요.” 그는 “글은 사람 자체”라며 “쓰는 사람이 온전히 녹아들 수밖에 없는 것이 글이기 때문에 글에서 최우선적인 것은 가면을 쓰지 않는 진솔함”이라고 했다. 그는 카렌 블릭센의 경구를 말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써보라. 희망도 절망도 느끼지 말고.’ 그는 “외롭고 지칠 때마다 이 말이 힘이 됐다”며 “저도 꾸준히 써서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동문학(동화) 부문 당선자 이수빈(22·울산시 중구) 씨는 부산 기장군에서 태어나 울산서 쭉 자란 대학 문창과 4학년이다. “신춘에 너무 빨리 당선된 게 아니냐”란 물음에 어릴 때부터 각종 글쓰기 대회의 ‘수상 선수’였다는 그는 “올해 아동·청소년 전문출판사에도 취직했다”고 했다. 원래 소설 쓰기를 희망했으나 “글 쓰는 스타일이 따뜻하다”는 주변의 말을 들어 대학 3학년 때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동화는 우리가 모두 살아온 시간, 모두가 품고 있던 이야기, 망각하고 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요. 그게 바로 ‘동심’이에요.” 그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편하게 읽고 위로받을 수 있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며 “사실 저도 힘들었을 때 읽은 동화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를 위한 동화를 열심히, 꾸준히 쓸 거예요.”
평론(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수차미(본명 김선호·25·경기도 수원시) 씨는 영화이론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사회복무요원이다. 18개월 복무 중 100일을 남겨놓았다고. 대학 4년 때 평론 상 2개를 받았고, 또 대학원 들어갈 때와 이번 당선으로 졸업한 이후 각 1개의 상을 받게 돼 “느낌이 있는 거 같다”고 했다. 대학 1년 때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상실감과 마음 치유를 위해 SNS에 연애에 대해 쓴 글이 인기를 얻은 이후 그는 인터넷 언론 매체에 2년간 105개 영화 평론 글을 올리는 열성적 기고자가 됐다. 요즘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웹진의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만화평론을 많이 쓰고 있다. 글을 끊임없이 써왔다는 그는 “글을 통해 뭔가 이뤄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듯, 아침 알람 소리를 끄듯 목적이 사라진 ‘삶 그 자체’로서의 글을 쓰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글은 집을 짓는 일이에요. 평론이란 어쨌든 아주 광범한 생각을 잘라, 글 틀 속에 넣는 것이어서,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는 “딱딱함 진중함보다는 일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글을 통해 다양한 글이 유통하는 ‘유전적 건강성’의 사회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무엇보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짧은 1시간여의 단체 인터뷰였지만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밀도 있었다. 그들이 그간 쌓아온 녹록잖은 글쓰기 고투가 말로 응집되는 순간이었을 테다. 고투가 있어야 더욱 빛이 난다는 삶의 역설과 순리, 그 모든 것이 이제 저들의 것이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