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현대차노조에 '연임 위원장'이 없는 이유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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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노동계 ‘강성 챔피언’ 현대자동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37년 역사상 누구도 갖지 못한 타이틀이 있다. 4만 5000여 조합원이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자리, 바로 ‘연임 위원장(지부장)’이다. ‘불도저’로 불리는 안현호 전 지부장도 최근 연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선배들의 전철을 뒤따랐다.

이유는 ‘견제와 균형’ 두 단어로 요약된다.

웬만한 소도시 인구와 맞먹는 이 거대 노조 안에는 크고 작은 노동조직 5~6개가 정당처럼 활동하며 선거철마다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한다. 새해부터는 문용문 지부장을 배출한 ‘민주현장’이 여당, 안 전 지부장이 속한 ‘금속연대’가 제1야당쯤 된다.

현장조직들은 신임 집행부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며 집중 견제한다. 절대다수를 확보한 현장조직이 없다 보니 서로 ‘선명성 경쟁’에 사활을 건다. 가장 좋은 먹잇감은 집행부 조직과의 차별화다. 임단협 성과에 흠집을 내거나 현안마다 강경 투쟁을 부추긴다.

누구를 탓하랴. 기존 집행부 역시 전임 집행부를 흔들던 반대파 중 하나였지 않나. 표심을 잡기 위해 선명성 경쟁에서 나온 무리한 공약들이 당선 뒤에는 자충수가 되고 경쟁 조직에 빌미를 주기 일쑤다.

이는 상투적 권력투쟁에 매몰된 노조운동의 민낯을 드러내는 동시에, 노조 내 민주주의가 상당히 활발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의 집단지성은 ‘견제와 균형’의 토대를 쌓는다. 조합원으로선 현장조직끼리 경쟁하게 하는 편이 단연 이득이다. 연임에 인색하지, 다선에는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문 지부장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7명의 지부장이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했다. 그래서일까. 2년 임기가 끝날 때마다 ‘사상 첫 연임’에 대한 미련이 슬쩍 엿보인다. 공장의 민심은 티 나지 않게 노조 권력과의 ‘밀당’을 즐기는 것 같다.

조합원들은 선거철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견제와 균형’을 택한다. 아무리 강력투쟁을 일삼아도, 누구보다 많은 임단협 과실을 따와도, 민심은 오랜 기간 한곳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비리는 단호하게 응징한다. 과거 도덕성에 흠집이 난 현장조직은 반드시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지부장 자기 안위만 생각한 채 사람을 키우지 않는 조직도 여지없이 도태되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진 현장조직과 노조 내 명망가가 어디 한둘인가. 표심은 겨울철 칼바람보다 매섭고 엄혹하다.

국내 최대 단일 노조의 다양성과 생명력은 이처럼 ‘견제와 균형’에서 그 원동력을 생산한다. 그래서 현대차노조는 어떤 조직의, 누구의 텃밭으로 불리지 않는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은 적어도 현대차노조에서 통용되는 공식은 절대 아니다. 민심이 만들어가는 컨베이어벨트에는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이 올라탈 여지가 좁다.

혹자는 하필 고임금과 잦은 파업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국민 밉상’ 현대차노조를 예로 들어 새삼스레 당연한 말을 늘어놓느냐고 토를 달지 모르겠다. 현대차노조는 기성 정치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서다. 그들만의 선거 풍경을 보고 있자면 현실 정치 세태 또한 곱씹어보게 한다.

오는 4월 거대한 민심이 소용돌이치는 총선의 계절이 다가온다. 새해 대한민국에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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