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화 논란’ 통영 해저터널 리모델링, 문화재청이 ‘제동’
‘문화재 현상변경’ 신청 불허 처분
동양 첫 해저터널 특성 변화 우려
유료화 계획에도 반발 여론 거세
시 “사업계획 변경, 재심의 요청”
경남 통영시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해 온 ‘해저터널 미디어아트 테마파크’(부산일보 3월 27일 자 11면 보도)가 암초를 만났다. 국가등록문화재인 탓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가 필수인데, 문화재청이 제동을 걸었다. 앞선 통행료 징수 논란에 지역 내 반감이 상당한 가운데, 인허가 절차까지 막히면서 사업 자체가 백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일 통영시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달 열린 ‘제12차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를 열어 ‘통영 해저터널 현상변경의 건’을 참석 위원 9명 만장일치로 부결 처리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해저터널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현지 조사를 진행한 한 위원은 △사업 목적과 해당문화재 보존, 활용 관계 △사업구간별 계획 내용과 시설이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 △사업시설 설치 이후 문화재 유지 관리 방안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영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집단촌이 형성된 미륵도(봉평동)와 육지(당동)를 연결하려 건설된 동양 최초 해저 구조물이다. 1927년 5월 착공해 5년여 만인 1932년 12월 개통했다. 당시 바다 양쪽을 막은 뒤 콘크리트를 쳐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 해수면 기준 최대 깊이 10m 규모 터널을 완성했다.
초기엔 사람은 물론 차량도 오갈 수 있었지만, 노후화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1967년 충무교 개통 후 차량 통행은 금지됐다. 이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제201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볼거리가 없어 관광지로는 외면받았다. 터널 입구에 걸린 ‘용문달양(龍門達陽, 용문을 거쳐 산양에 도달한다)’이란 멋스러운 글귀와 달리 속은 어둡고 칙칙한 콘크리트 통로만 계속될 뿐이다. 한 차례 새 단장을 거쳤지만 밋밋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지식산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통영을 찾는 관광객 10명 중 8명(79.1%)이 해저터널이 있는지도 몰랐다. 애써 해저터널을 찾은 방문객의 만족도도 크게 떨어졌다. 무려 71%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이 중 42%는 ‘매우 불만족’ 의견을 냈다.
이에 통영시는 해저터널 안팎을 최신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복합 미디어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현대화사업을 기획했다. 2019년 타당성조사 용역을 토대로 기본계획을 수립, 2021년 (주)통영해저테마파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사업자는 215억 원을 투입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당동과 미수동 진출입부에 높이 11.2m, 폭 11.1m 지상 2층 규모 박스 형태 유리 구조물을 세운다. 해풍 등에 취약한 입구 목조물을 보호하면서 현대적 느낌을 극대화하는 공간설계다. 내부는 8개 구간, 14개 아이템을 갖춘 전시구조물로 채우기로 했다.
반면 지역에선 반복된 리모델링 작업에 따른 안전성 저하, 역사성 훼손, 주민 불편 우려가 커지면서 논쟁이 가열됐다. 특히 성인 기준 1만 8000원으로 책정한 유료화 방침은 거센 반발을 샀다. 현재 해저터널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를 두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민간업자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는 꼴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시는 뒤늦게 무료 순환버스를 도입해 주민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후 불만 여론이 일부 수그러들자 인허가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번에 문화재청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내년 준공은 물 건너갔다. 최악의 경우, 전체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수도 있다.
통영시는 사업 계속 추진을 위해 재심의를 요청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높은 희소 가치에도 특색 있는 콘텐츠가 없어 지금도 보존과 개발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면서 “심의 의견을 토대로 사업 계획을 변경해 다시 한번 판단을 받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