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위생적 ‘바닥 위판’ 역사로 남기고 현대화 첫 삽 떴으면…”
부산공동어시장 초매식 현장
만선 기원하며 열린 새해 첫 경매
지난해 ‘반짝 특수’에도 위기감
시설 낙후로 위판 처리 감소세
올해 현대화 사업 본궤도 올려야
착공 미뤄지면 사업 어려울 수도
2일 오전 6시 30분 부산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 새해 첫 경매를 기념하는 초매식이 열린 이곳은 해가 채 뜨기도 전이었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꽹과리 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초매식과 풍년기원제가 열리는 와중에도 반대편에는 새벽에 들어온 수산물을 두고 중도매인과 경매사의 ‘소리 없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고등어를 주로 잡는 대형선망이 날씨 탓에 출항 날짜가 밀리면서 이날 어시장은 쌍끌이·외끌이 기선저인망이 조업한 방어와 조기 등으로 가득했다. 바닥에 놓여 냉기를 뿜어내는 생선을 둘러싸고 중도매인과 경매사는 쉴 새 없이 손짓을 주고받았다. 올해 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시작하면 점차 사라질 재래식 위판의 모습이다. 이날 만난 어시장 한 경매사는 “지난해 어획량이 좋아서 무척 바빴는데 올해도 나가는 배마다 만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호실적에도 못 웃는 어시장
어시장은 지난해 위판량 15만 2311t, 위판고(매출) 3237억 4153만 원을 달성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10년 만의 최고 매출이며, 지난해 목표치인 14만t, 2800억 원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어시장은 올해 목표로 위판량 16만t, 매출 3000억 원을 내세웠다.
어시장 관계자는 “지난해는 평년보다 태풍 발생이 적어 조업을 많이 나갈 수 있었다. 여기에 최근 아프리카와 중국이 국내산 고등어를 수입하는 양이 늘면서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어시장의 이런 ‘실적 잔치’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1990년대 평균 위판량은 32만 7491t에 달했지만 2000년, 2010년대 평균 위판량은 각각 24만 7237t, 18만 136t으로 쪼그라들었다. 매출 실적은 최근 해외 시장의 수입에 힘입어 크게 올랐지만, 위판량은 여전히 2010년대 평균에 다가서지 못하고 감소세를 이어갔다. 매출도 해외 시장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어 매년 국제 정세에 따라 수요가 출렁일 위험이 있다.
■“올해 현대화 원년 삼아야”
어시장이 위기에 맞닥뜨린 가장 큰 이유는 시설 낙후와 근대적인 위판 방식 때문이다. 어시장은 1973년 문을 연 뒤 1983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반백 년 동안 이렇다 할 시설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매년 들어가는 개보수비가 상당하다.
또한 어시장은 주력 어종인 고등어의 경우, 바닥에 쏟아붓고 사람이 일일이 분류하는 ‘바닥 위판’ 방식을 사용한다. 고등어가 담기는 상자도 절반가량 나무 상자인 데다, 조류 차단 시설이 없어 갈매기 수백 마리가 상자 위를 수시로 날아다닌다.
시설 낙후에 인력난까지 더해져 어시장은 3~4년 전만 해도 고등어를 하루 10만 상자(상자당 20kg) 정도 위판했지만 현재 처리량은 6만여 상자에 불과하다. 어획량이 많아도 어시장이 이를 다 처리할 수 없어, 일부 선망은 다른 위판장으로 뱃머리를 돌려야 하는 지경이다.
이에 따라 어시장의 최대 현안인 현대화 사업을 올해 본궤도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2284억 원을 들여 시설을 재건축하고 자동 선별기 등 현대적인 위판 방식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는 이르면 3월 말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초매식에 참석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이 올해 우리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착공 미지수… 2000억 날리나
하지만 현대화 사업이 첫 삽을 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협과 중도매인 측이 수산물 위판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공사 동안 ‘대체 위판장’이 필요하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초매식에 참석한 어시장 중도매인협동조합 민종진 이사장은 “현대화 사업은 우리나라와 부산의 발전을 위해 100년 뒤 미래를 보고 신중히 진행해야 하는데 지금은 첫 삽에 급급한 것 같다”이라면서 “특히 어시장의 중요한 이해 관계자인 중도매인이 배제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만일 올해도 착공이 미뤄지면 2000억 넘는 국·시비가 투입되는 현대화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어시장 박극제 대표는 “올해를 어시장 현대화 원년으로 삼아 반드시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