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으로써 거룩함에 다가선 소설가’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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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규정 아카이빙 보고서
발자취 회고 자료 한데 모아
주변부 주목, 작가 길 일깨워

고 이규정 소설가는 온 힘을 다해 소설을 쓰면서 다양한 사회활동도 수행했다. 역작 <사하린>을 들고 있는 생전 모습. 부산일보 DB 고 이규정 소설가는 온 힘을 다해 소설을 쓰면서 다양한 사회활동도 수행했다. 역작 <사하린>을 들고 있는 생전 모습. 부산일보 DB

고 이규정(1937~2018) 소설가의 아카이빙 보고서 <이규정의 삶과 문학>이 나왔다. 제목 앞에 붙은 ‘성실함으로써 거룩함에 다가선 사람’이란 수식어가 이규정의 삶과 문학을 함축하고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소설을 쓴 더할 나위 없는 소설가’(조갑상)였던 것이다. 사제가 된 맏아들을 따라 신앙에 길에 들어선 그는 부산교구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 이규정은 부산 소설문학에서 ‘2세대’에 속한다. 1936년 요산 김정한의 등단으로 부산 소설문학사가 시작됐다고 할 때 해방 이후 향파 이주홍이 여기에 가세한 이후 1960~1970년대 등단한 2세대는 최해군 윤정규 신태범 정종수 윤진상 이규정 등이다.

부산문화재단의 4300만 원 지원에 의해 2023년에 이뤄진 아카이빙의 결과물은 530여 쪽. 그중 절반이 총론, 이규정 삶의 발자취, 이규정을 회고하다(14명 글·인터뷰), 이규정의 문학세계(4편)이고, 나머지 절반은 언론 기사, 저작물 영인, 사진 자료다. “그의 활동상은 이규정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허튼 공백 없이 얼마나 성실하였는가를 증명한다”는 것이 아카이빙 편집위원들의 말이다.

이규정 아카이빙 보고서 표지. 도서출판전망 제공 이규정 아카이빙 보고서 표지. 도서출판전망 제공

1937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16권의 소설책을 낸 이규정은 문학인 교육자 사회활동가 신앙인의 널따란 면모를 지녔다. 요산에 뿌리를 둔 부산 소설문학의 전통은 글과 삶의 일치를 지향하는 지사적 삶·글쓰기에 있는데 윤정규가 부산작가회의를 정초해 부산 문단을 재편성했다면, 최해군은 향토사와 연계한 시민운동을 펼쳤고, 이규정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의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들 3인의 모양새는 요산 전통을 떠받친 ‘2세대 솥발’ 같았다.

이규정은 아직 그것이 채 말해지기 전부터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두었다. 3권짜리 장편 <사하린>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사회주의 장벽이 무너지던 1991년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현지 취재했다. 그는 그때 우리의 한 서린 위대한 역사를 분명히 느끼면서, 작가의 길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한다. 5년간 쓴 것이 대하소설 <가까운 하늘 먼 땅>(1996)이었으나,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을 재출간해 비로소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 대하소설 <사할린>(2017)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장편 <천둥과 번개>(2015)다. 함안 출신으로 몽골의 한인 슈바이처로 불린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조명한 작품인데, 이 작품이 2021년 함안의 ‘대암 이태준 기념관’ 설립에 주춧돌을 놓았다. 세상을 바꾸는 소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 안타깝게도 소설가 본인은 그전에 타계했다.

독일에 있는 차남 이연우 씨는 ‘마음에 눌러쓴 아버지의 낱말들’이란 글에서 “아버지의 인생 낱말은 오지, 변방, 주변부, 디아스포라”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나그네만이 나그네의 고통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말씀을 실천하신 분”이라고 했다. “가난한 야간 통행금지 시절, 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던 앉은뱅이책상 위 따스한 등불 아래서 책을 읽으시거나 글을 쓰시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난다. 그것은 어두운 시절의 궁핍함을 조금이나마 밝히려던 작은 불빛이었을 것이다.”

아카이빙 작업은 부산작가회의 이름으로 했으며, 편집위원으로는 전성욱(책임편집) 조갑상 문혜정 김남영 배길남 서정아 김필남 정재운이 참여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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