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질문받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논설위원
취임 때 "야당 협치, 언론 만나겠다"
기자 회견 기약 없고, 야권 안 만나
명예훼손 걸어 언론 대대적 압수수색
비판·감시 거부하는 불통 이미지 자초
민주 국가 대통령에 침묵할 권한 없어
국민 앞에 서서 안팎 난제에 대답해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국을 4곳이나 폐쇄했다. 이후 방송이 정부 발표만 전하도록 법률로 강제했다. 전시 비상 조치가 아니다. 2022년 2월의 러시아 침공 1년 전의 일이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령을 내려 야당을 불법화했다. 우크라이나정교회(UOC)도 폐쇄했다. 올 3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는 기약이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지금은 선거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제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으로 선을 그은 건 합당하다. 그런데 지난 연말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한국산 155㎜ 포탄이 전체 유럽 국가의 공급량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뜨악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대러 무역 제재를 계기로 러시아는 “앞으로 놀라지 말라”며 보복 경고장을 날렸다.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헐값에 매각하고 철수한 건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과도 불편한 관계가 이어진다. 중국 내 반한 정서 확산 그리고 중국에 대한 수출 감소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러시아와 중국 외교는 난맥상이다. 소원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보복을 벼르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한미 동맹의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있을 수 있다. 하나, 그 과정에 내부의 공감대와 섬세한 조율이 빠진 게 문제다. 윤석열 식 외교에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는 게 그런 이유다.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징용자 배상, 위안부와 원전 오염수를 다루는 데 있어 대통령의 언행은 국민 정서와 괴리감이 크다. 그러고도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소통 대신 독주하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국익이 걸려 있는 외교 현안이라면 여야 정치권과 국민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선행 절차 없이 대통령 ‘나 홀로’가 되풀이되면 일이 꼬이기 십상이다.
“격노했다.” 요즘 대통령이 특정 현안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전언이 빈번하다. 대통령이 화를 내면 참모는 입을 닫게 된다. 대화와 설득에 열려 있지 않으면 듣기 싫은 보고는 누락되고 자화자찬만 남는다. 119 대 29. 충격적인 2030부산세계박람회 투표 결과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대통령이 듣기 좋아하는 보고만 올린 탓에 어처구니없는 예측 실패로 이어진 게 아닐까였다. 외교 전반이 의전만 있고 실속은 없는 속 빈 강정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일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첫 기자 회견 때의 약속이다. 얼마 뒤에는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 해서 현장 기자들이 큰 박수로 환영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마지막 기자 회견은 2022년 8월, 벌써 1년 5개월째 중단된 상태다. 출근길 약식 기자 문답, 속칭 도어스테핑은 2022년 11월에 끝났다. 질문받기는 거부한 채 하고 싶은 말만 한다고 비판해도 반박하기 어렵게 됐다. 국정 현안을 놓고 야당 대표와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집권 3년 차까지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않았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우주항공청 설립 등 꼬인 현안에 대통령이 먼저 나서 야당의 협조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불통의 절정은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수사다. 후보 시절의 검증 보도가 빌미가 되어 뉴스타파, JTBC를 비롯해 언론인 자택까지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수사는 언론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보도를 한 MBC의 경우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등 다양한 불이익을 줬다. 권력을 비판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신종 언론 탄압이라 불려도 괜찮다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를 19차례, ‘민생’을 9차례 강조했다. 저출산·인구 절벽 해결책으로 지방균형발전을 제시했다. 모두 옳은 말이다. 한데, 국정 추진에 동력이 붙으려면 독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대외 악재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예고하고, 서민들은 고금리, 고물가에 한층 더 팍팍해질 삶을 걱정한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장밋빛 청사진이 국민에 위로를 주기는 역부족이다. 대통령이 왜 나서지 않는가. 자화자찬, 무책임 등의 비판적인 지적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선출권을 가진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판과 감시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에게 침묵할 권한은 없다. 새해에는 질문받고 설명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