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미쉐린 가이드와 맛집
중국 청나라 건륭제는 잠행(潛幸, 임금이 비밀리에 하는 나들이)을 즐겼다. 어느 섣달그믐 밤, 잠행을 마치고 환궁하려는데 배가 엄청 고팠다. 그런데 배를 채울 곳이 없었다. 명절 전야라 대부분 음식점들이 일찍 문을 닫았던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 불이 켜진 음식점을 겨우 발견했다. 작고 허름한 곳이었으나 반가운 마음에 건륭제가 물었다. “어찌 이리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두었소?”
상대가 황제인지 모르는 주인이 답했다. “황제께서 밤낮없이 국사를 돌보시는데, 장사치가 일찍 문을 닫아 백성들이 허기를 채우지 못하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오.” 기꺼워진 건륭제는 나온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실상 변변찮은 음식이었으나 그에겐 일찍이 먹어본 산해진미가 도저히 따르지 못할 맛이었다. 다음 날 건륭제는 직접 상호를 쓴 편액을 보냈다. 상호는 ‘도성에 딱 한 곳’이란 뜻의 ‘都一處’였다. 오늘날 딤섬으로 유명한 베이징의 ‘두이추’가 바로 그 집이다.
‘미쉐린 가이드’ 부산편이 다음 달 22일 처음 소개된다고 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제조사인 미쉐린이 매년 발표하는 음식점·여행 안내 서비스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가이드에 상호 올리기가 몹시도 까다로워,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에야 서울의 음식점들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부산이 대상 도시로 선정된 건 그만치 대단한 일인지라, 부산시가 나서서 당일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미쉐린 측과 함께 기념행사를 가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쉐린 가이드에 호평만 있는 건 아니다. 음식과 맛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거기에 등급을 매겨 우열을 가르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비판이 있다. 주로 서양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음식 위주로 선정한다는, 그래서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 표상이라는 질책도 있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고가의 음식들, 또는 이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저 사람도 알아서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점만 나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요컨대, 미쉐린 가이드에 지나치게 호들갑 떨지는 말라는 게다. 날마다 화려하고 값비싼 음식만 먹었을 황제가 시중의 작고 허름한 음식점에 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건륭제에게 ‘두이추’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기꺼움을 준다면 그곳이 진정한 맛집인 법이다. 대단한 그 누구의 안내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