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새해면 생각나는 김지태 회장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1949년에 이미 거대한 부산 비전 제시
부산 역사·인물을 기리는 건 미래 다짐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함’ 담느냐가 관건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생일을 잊어버리고 지나갈 때가 가끔 있다. 그래도 사실 사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회적 생일은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일부러라도 찾아보며 기억한다. 현대 부산을 만드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기념일 가운데 두 개가 특히 그렇다.
하나는 1876년의 개항이고 또 하나는 1963년의 직할시 승격이다. 이들 기념일은 ‘부산의 생일’이라고 보아도 좋을 날들이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나가면 부산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계산을 해보곤 한다. 오랫동안 이런 계산을 해 오면서, 근년에 들어 부산이 이런 날들을 기억하는 데 인색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2012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로서, 음력으로는 7주갑이 되는 해였다. 2016년은 개항 140주년이었고, 작년 2023년은 직할시 승격 60주년이었다. 50이나 100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에 해당하는 연도가 아니면 의미를 덜 부여하는 관행에서 보면 이런 날들을 특별하게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나무랄 바는 아니다.
그러나 기념이라는 것은 기억이면서 의식이고 그것은 현재를 반영한다. 우리 시대가 무엇인가 새롭게 활기찬 것을 밀어 갈 때는 자주 생일을 챙기게 되고 스스로 격려하며 힘을 얻는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개항 140년인 2016년을 조용히 보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수년 전부터 생산에서 부산을 앞지른 인천은 개항 140주년을 돌아보는 이런저런 기억을 들추고 있었다. 부산보다 7년이나 늦게 개항하였던 인천이 부산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자신들의 길을 찾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직할시 승격 60주년도 그냥 그렇게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직할시 승격을 떠올릴 때면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임의단체 부산상공회의소 초대 및 2대 회장이었던 김지태 선생이다. 훗날 직할시 승격안으로 수정되지만 당초는 특별시 승격안으로 제시되었는데, 이 구상의 많은 부분이 김지태에 의해 제시되고 또 추진되었다.
부산을 근대 상공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직할시 승격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에 걸맞은 굵직한 사업들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김지태는 생각하였다. 중앙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부산상공회의소의 이름으로 만든 제안서에 나타난 당시의 구상을 보면 지금으로 보아도 놀랄 만큼 미래지향적이고 대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태가 직할시 승격을 제안하고 부산의 미래상을 제시한 1949년의 인구는 50만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구상에는 이미 수백만이 사는 거대한 글로벌 도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저에 국제공항을 건설하고 낙동강의 한쪽이 아닌 양안을 낀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해까지 염두에 둔 시선이었다.
서면이 앞으로 부산의 중심이 될 것을 알았고 이 서면으로 부산역을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부산의 중심이 될 서면 인근 지역에 주택지를 개발하고, 부산항의 현대화와 인근의 적기에 신항만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동천과 낙동강을 운하로 연결하는 대담한 구상도 있었고 지하철과 전기 및 전신주의 지하화도 있었다. 해운대와 동래가 관광지가 될 것을 미리 예상하였고, 기차역이 옮겨 간 부산역 부근은 상업지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을 묶어 김지태는 ‘대부산’이라 불렀다. 실제로 많은 제안들이 현실이 되었고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는 구상들이었다.
부산을 크게 바꾸어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2030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면서 부산의 미래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많이 허탈해하고 있다. 잘 되었으면 부산을 바꿀 또 하나의 ‘기념일’이 될 수도 있었을 엑스포가 그래서 두고두고 아쉽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수사가 나오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기념일이 될 만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몇 가지 사업들은 계속 언급되고 있다. 가덕신공항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차질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정부가 약속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에 대한 기대도 크다. 여기에는 얼마나 ‘특별’한 것을 담을 수가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다시 김지태 회장으로 돌아와 보자. 그가 지금 부산의 미래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아마 기존의 구상을 약간 수정하면서 글로벌과 광역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 신공항과 글로벌 허브도시도 이런 방향에서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예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도시가 된 부산이지만 마음은 더 작아진 듯하다. 작은 기념일도 챙겨가면서 포부를 크게 가져가는 부산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