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진영 정치가 극단적 테러 행태 불렀나
송영길 둔기 테러 이어 흉기 등장
여야 대립 첨예할수록 과격 양상
증오·갈등 증폭시키는 정치 풍토
테러행위 활성화하는 토양 된 듯
희망의 새해 벽두 우리 정치권의 핫뉴스는 불행히도 2일 불거진 제1야당 대표의 흉기 피습 사건이었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폭력 행위인 소위 ‘백색·적색 테러’는 우리 정치권에서도 그 연원이 길다. 그러나 최근 그 정도가 점점 극단화·흉포화하는 양상이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적 경쟁자를 ‘공존하지 못할 적’으로 규정하는 여야의 극단적 진영 정치가 낳은 산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방문 도중 흉기로 습격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 비슷한 사례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독재·권위주의 정부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1969년 6월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질산 테러가 효시격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을 태운 승용차가 서울 자택 근처 골목길에서 신원불상의 청년이 던진 질산 유리병에 차량 후미를 맞았다. 3년 뒤인 1972년 10월에는 일본에 망명해 있던 재야 정치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납치 사건도 벌어졌다. 범인은 유신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김 전 대통령을 제거하려던 중앙정보부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인들의 수난은 간간이 이어졌으나, 정적의 목숨을 노리는 치명적 테러라기보다는 계란이나 물을 던지는 등 정치적 항의 수단의 성격이 강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서 연설하던 도중 야유하는 청중 사이에서 날아온 달걀에 아래턱을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2007년 12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거리 유세를 하다 승려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며 던진 계란에 허리 부근을 맞았다. 같은 해 11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 30대 남성이 계란 여러 개를 투척하며 소동이 벌어졌다. 물론 2006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유세를 하려는 도중 50대 지 모 씨가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는 심각한 테러를 당하는 예외적인 사례도 있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폭력은 여야 대립이 첨예화된 최근 몇 년 새 그 강도가 세지는 추세다. 2018년 5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에 지지자를 자처한 30대 남성 김 모 씨로부터 주먹으로 턱을 가격 당했고, 열흘 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토론회 중에 지역 주민으로부터 얼굴과 팔 등을 폭행 당했다. 특히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를 위한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에 유튜버인 표 모 씨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수차례 가격 당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농성장에서 50대 여성이 국회 직원을 흉기로 찌르고, 70대 남성은 흉기로 자해를 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가 상대방을 향한 증오를 키울수록, 지지층의 보복 심리도 극단화될 수밖에 없다”며 “여야가 지지층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하고, 여야 간에도 가급적 감정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 절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보복운전’ 혐의 유죄로 직을 내려놓은 친이재명계 이경 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피습 사건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정치권에 이런 극단적 흐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