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갑진년 새 아침 '9988234' 기원을!
김용식 부산시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성경’에 따르면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지만 필자 또한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나이가 되어 간다. 각 복지관에서 노인들이 말하는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게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를 희망으로 노래하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나오는 내용처럼 인생 소풍이 끝나면 석양에 지는 노을처럼 남기고 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 여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요양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사는 23만여 명의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오래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재가 보호를 받는 58만여 명 노인 환자 중에서 ‘노노케어’로 어렵게 사는 가정들이 많다. 늙은 부모는 90세가 넘어 거동이 불편한데 자녀인 70대 노인이 수발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도 건강이 좋지 않아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여서 신세를 한탄한다.
지난해 9월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한국과 일본 노인들에게 ‘100세까지 살고 싶은가?’를 물으니 한국 노인은 50.1%가 그렇다고 답하고, 일본 노인은 22.0%가 긍정으로 답했다. ‘왜 오래 살고 싶냐’는 질문엔 31.9%가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답했다. 과연 남은 인생이 노인 의사대로 더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반면 100세까지 살기 싫은 이유를 물으니 49.8%가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냐?’는 물음에 59%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병 등으로 돌연사를 원한다고 답했다. 노인들이 병상에 오래 누워 있는 현상을 보면서 노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반영한 조사였다. 결국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인생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이웃이나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노인이 되면 오래 살면서 4고(苦), 즉 빈곤, 질병, 고독, 무위(無爲)의 고통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데 동조하는 현대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노인 인구가 30%를 넘어서면서 간병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2017년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끔찍한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일본 NHK가 방영한 간병 살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랜 간병에 지친 가족에 의한 간병 살인이 연간 40여 건 발생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본은 2000년부터 돌봄과 간병 등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해 고령자의 간병을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간병비 부담이 4배로 증가하면서 돌봄 급증에 따른 인력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오랜 간병은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진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간병비가 월 400만 원 이상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전체 노인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시대로 접어든다. 2060년대는 45%를 넘어 세계 1위의 노인 국가가 된다. 게다가 합계출산율 0.7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한국이 2067년 한국 인구가 3500만 명으로 밑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방 자원도 감소해 국가 존립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교육비 증가와 고용 불안정, 주택 문제 등으로 저출산이 이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국가적 난제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65년 이후 생산성 인구와 노인 비율이 100대 104가 돼 결국 노인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이 급격히 증가한다면 이런 비극을 감당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국가가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백년대계’를 확실히 세웠으면 한다. 갑진년을 맞아 ‘9988234’를 소원하는 노인들도 건강을 스스로 지켜 자녀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활력 넘치게 살도록 노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