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서로 영향 삶이 확장되는 경험”
책갈피와 책수레 / 대우서점 독서회
보수동 책방골목 책 모임 10년
‘책연’으로 맺은 환대의 공동체
소멸 위기 지역 살릴 가능성도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진한 러브 스토리다. 첫사랑, 함께 해서 더 즐거운 사랑(?), 사랑의 비밀, 내 인생 최고의 사랑을 여럿이서 돌아가며 고백한다. 오해는 마시라. 그들이 지극히 연모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다. 오죽 책을 좋아했으면 어떤 분은 중학교 때부터 소원이 등대지기가 되는 것이었을까. 어린 마음에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등대지기라고 생각했단다. <책갈피와 책수레>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대우서점 독서회 회원들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다 먼저 든 감정은 질투와 경계심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돌아가며 썼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것일까.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 있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나와 아이들이 지나는 곳마다 검은 자취들이 나타났는데 마치 자연이 마련해 준 도화지 위에서 눈삽으로 스크래칭(Scratching)을 하는 듯했다. 어린 마음에 그건 일종의 도술이고 마법이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쌓이는 눈 때문에 지붕이 무너질 지경에 처하자 아버지가 초등학생이었던 저자를 슬레이트 지붕 위로 올렸다고 한다. 눈삽을 들고 올라와 보니 다른 집에서도 아이들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절묘한 묘사는 다독, 다작, 다상량(多商量) 덕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역시나 회원 중의 한 분이 멋지게 답을 내놓았다. “글을 쓰면서 읽으면 머리가 재구성된다. 비워진 만큼 다시 배가 고파진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독서회에 대해 정작 궁금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축구나 야구처럼 단체 운동도 아니고, 탁구처럼 상대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왜 남들과 같이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점이었다. 60대 여성 회원이 독서회에 열심이자 남편이 책 내용이나 제대로 알고 가느냐고 놀린다는 사연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머지 참여자들이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어떤 말이었는지는 책을 사서 확인하시면 좋겠다.
대신 이 모임의 구심점이었던 김종훈 대우독서회 회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서로 배려하며 함께 읽다 보면 예기치 못한, 전혀 뜻밖의 분야나 내용을 접하게 되는 놀라움, 독서회가 아니면 접하지 않았을 책들을 읽게 되는 반가움, 읽고 나서 의식과 지식이 확장되어 가는 성취감 등 다른 취미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독서회는 개인의 관심이 어느 쪽으로 쏠려 있을 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회원들의 기본 소양이 다르고 선호하는 책이 달라서 다양한 관점을 보게 된다.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에 매진하다가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숨을 쉬러 온다”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멋진 표현이다.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명을 받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슬며시 궁금해진다.
여기서의 독서 경험을 벤치마킹해서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액티브 시니어 대상 모임을 결성해 격주로 독서 토론을 진행하는 분도 있었다. 시를 함께 낭송하면서 시작하고, 참여자 한 명이 낭송한 시를 캘리그래피 작품으로 만들어 선물로 준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내니 집에 돌아가면 스트레스가 쫙 풀리고, 정신적으로 큰 힐링이 된다. 독서 치료의 힘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책을 낸 이유를 알 것 같다. 책 모임은 ‘책연’으로 맺어진 환대의 공동체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독서 모임을 꼭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삶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지역에서 나온 책이라 익숙한 지명과 낯익은 저자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책 모임이 소멸 위기의 지역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보도가 되어 아는 독자들이 많이 있겠지만 대우독서회의 모태가 되었던 보수동 책방골목의 대우서점은 아쉽게도 섬진강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느낌도 든다. 대우서점 독서회 지음/호밀밭/272쪽/1만 6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