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미제’ 울산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 손톱 DNA로 범인 잡았다
2012년 울산 한 다방서 50대 여주인 피살
당시 500여 명 수사했으나 용의자 못 찾아
과학수사 기법 발달하면서 2019년 재감정
용의자 신원 확인해 4년간 보강 수사 진행
‘화성 연쇄 살인사건’ 프로파일러 등 투입
경남 양산서 일용직 노동자 A 씨 긴급체포
경찰 조사서 “성관계 거부하자 홧김에 범행”
12년 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울산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의 진범이 마침내 붙잡혔다. 과학수사 기법의 발달로 경찰이 피해자 손톱에 남아 있던 DNA로 용의자를 검거하면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넋을 위로할 수 있게 됐다.
4일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이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9일 오후 9시 27분 울산 남구 신정동 한 다방에서 업주 A(50대)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발견 당시 현장에는 A 씨와 다방 내실에서 생활하던 애완견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다방 출입자와 인력사무소, 주변 가게 등 500여 명을 수사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당일 다방을 오간 것으로 확인된 손님 중 9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수사했는데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다. 다방에 설치된 회전형 CCTV에도 범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피살된 여주인의 손톱에 남아 있던 DNA 시료. 경찰은 이 시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으나 당시 감정 기술에 한계가 있어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고, 울산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사건을 넘겨받아 계속 수사를 이어갔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이 사건은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경찰은 201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미제 협력 분석실’과 협력해 DNA 시료를 재감정한 결과, 2012년 확인하지 못한 유전자 정보의 인적사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이 DNA는 2013년 1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찻값 문제로 여주인을 폭행해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A 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로소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DNA 증거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즉각 보강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팀은 A 씨 과거 행적을 샅샅이 훑어가며 사건 당시 주변인 300여 명을 만나고, 12년 전 A 씨 행적을 찾기 위해 500여 곳을 탐문하는 등 사건의 조각을 다시 맞춰나갔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던 보강 수사가 무려 4년간 이어지자 묻힐 뻔한 그날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A 씨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됐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A 씨가 주변 여관 등을 전전하면서 다른 다방도 자주 찾았는데 살인 사건이 발생한 뒤 발길을 뚝 끊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 프로파일러와 16년간 미제로 있던 ‘인천 택시강도 살인사건’ 프로파일러 등을 투입해 조사 전략을 짜는 등 용의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수사했다.
이후 경찰은 A 씨 위치를 추적해 지난달 27일 경남 양산의 한 여관에서 살인 피의자 A 씨를 검거했다. A 씨는 검거 직후 예상대로 범행을 부인했으나,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이 라포(친밀감) 형성 등을 통해 설득에 나서면서 A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수사팀은 A 씨에게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주인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홧김에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 씨는 또 “살인을 해 숨어 사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