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매한다, 고로 존재한다?
물욕의 세계 / 누누 칼러
현대 자본주의 소비 행태 꼬집어
시장과 산업이 소비를 부추기고
공급이 공급 결정하는 묘한 구조
스마트폰이 연신 ‘당근’을 달라고 조른다. 하루 중 ‘카카오톡’ 알림음 다음으로 많이 울리지 않나 싶다. 그만큼 많은 키워드를 설정해놓아서다. 그만큼 사고싶은 게 많아서다. 중고거래를 애용하는 것은 빠듯한 주머니 사정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스스로의 합리화가 더 큰 이유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보다 싸게 산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알리익스프레스’의 ‘핫딜’ 또한 같은 구조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소비 행태를 탓한다. 나는 자본주의의 소비 구조를 탓한다. 나약한 구매자가 거대 기업의 유혹의 덫을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마음 편히 다시 쇼핑에 빠진다.
소비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 <물욕의 세계>는 사회학과 심리학, 진화생물학 등 인문과 과학을 넘나들며 사람들이 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넘치도록 사는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물욕(物慾)’이라고는 하지만, 그 욕심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소비 충동을 자극하는 유혹에 노출된다.
TV를 켜고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순간 우리는 그들(대기업을 포함해 우리에게 상품을 떠넘기려 눈이 벌건 판매자들)의 타깃이 된다. 드라마 속 PPL이 그러하다. 휴대폰 속 SNS 인플루언서들도 앞다퉈 ‘인생템’을 소개한다. 힐링을 위해 캠핑 유튜브 채널을 클릭하지만, 어느새 캠핑용품을 검색하고 있다.
그들은 교묘하다. 우리는 대부분의 대형마트 내부에 굳이 베이커리를 입점시키는 것이 단순히 빵을 팔기위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다른 품목의 매출까지 증가시킨다는 실험 결과는 의외로 많다.) 저자가 동네의 작은 마트에 가서 세어보았더니, 판매하는 딸기 요거트의 종류만 무려 27가지, 매니큐어의 종류는 무려 352가지나 됐다고 한다. 그 많은 것들을 다 팔려니 교묘하고 치밀해지지 않을 수 없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시스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이 공급을 결정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막대한 공급량에 직면한다. 대표적인 예가 옷.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의류 생산은 2배 늘었다. 2015년 생산된 의류의 양은 1000억 개에 이른다. 당해에 팔리지 않은 옷은 대체로 소각된다. H&M의 경우 2013년 이후 덴마크에서만 매년 평균 12톤의 옷을 불태웠다. 또한 새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및 유해물질 배출량의 5% 이상이 발생한다. 이는 비행기와 선박에서 배출되는 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가 ‘자원의 유한성’이다.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대한 궁리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경쟁이 생기고 그것들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경제학이 생겨난다. 그런데 최근의 자본주의는 자원이 무한한 양 끝없이 그것을 공급하고 소비하게 만들면서 굴러가는 것 같다. 아이러니다.
어쨌든 사람은 소비를 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소비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산업이 우리의 소비 충동을 부추긴다. 그 사실이 명확해진 이상, 우리는 이 넘쳐나는 물욕의 세계에서 어떻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고민을 오히려 더 깊게 만들기도 하고, 또한 해결책의 단초를 제시하기도 한다. 누누 칼러 지음/마정현 옮김/현암사/328쪽/1만 8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