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전세사기와 정보 비대칭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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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부동산팀 기자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A는 전국 1만 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하나다.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사기를 막을 순 없었다. 인자한 미소의 중년 임대인은 사실 체납 세금만 억대에 달하는 인물이었다. A는 전세 보증금 2억 5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1년 넘게 8평 남짓한 서울의 한 원룸에서 비좁고 막막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지인인 B는 지난달 전세 계약을 맺었다. B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에 가입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임대인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뒷조사 당하는 게 싫다”며 으름장을 놨다. B가 세입자의 권리를 설명하자 그는 보증 상품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증금 500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찜찜했지만 B는 임대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전세사기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 전세계약이 체결되면 집주인은 채무자가 되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가 된다. 희한하게도 전세시장에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눈치를 본다. ‘집 없는 설움’이라는 이유로 권리는 저당잡히고 관계는 역전된다.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등기부등본이나 공인중개사의 설명 정도가 전부다.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이나 대출로 쌓인 빚 등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 관계는 그야말로 ‘깜깜이’다. 중간에 집을 팔아서 채무자가 바뀌는 경우에도 이를 알 방법이 묘연하다. 심지어 주택도시보증공사와 같은 보증기관도 임대인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임대인들의 주택·토지 관련 정보와 금융 정보, 세금 체납 현황, 파산·회생 여부 등을 연동해서 미리 파악할 수는 없을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여러 유관 기관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통합하는 일은 번거로울 수는 있을지언정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선량한 임대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임대인을 의식해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너무도 많은 임차인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장애는 물론 신체적 질병까지 얻었다는 설문 조사도 있다.

사기 피해가 발생한 뒤 피해 금액을 보전해 주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전세 사기는 언제든 만연해질 수 있다. 사회적 재난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때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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