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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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새 해가 떠올랐다. 새로운 해는 저마다의 각오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안고 희망찬 빛을 되쏘아준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며 살아갈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 년이 지났는데 새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이런 빛의 의미를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이 빛을 한껏 나눠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빛의 특성을 이어받아 심장으로, 손끝으로 빛의 따스함을 나눠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부디, 온 누리에 고루고루 빛이 비쳐 모두가 따뜻해지는 새해가 되기를

어떤 이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어둑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산맥 위로 먼동을 밝히는, 혹은 수평선을 물들이며 광휘를 드리우는 빛의 거룩한 본체를 보기 위해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어쩌면, 빛이 세상 전부에 골고루 비추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님의 빛은 온 세상을 골고루 데워준다. 고급 승용차의 코팅된 선루프, 배달 오토바이의 차가운 안장, 녹슨 손수레의 낡은 바퀴에도 빛살은 도달한다. 그렇다. 빛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 빛을 가로막는 돌출물만 없다면 말이다.

돌출물은 각양각색이다. 우뚝 솟은 누군가의 기념탑일 수 있으며, 거대하게 확장된 건축물 탓일 수도 있다. 돌출물은 상상도 못할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햇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선,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로 그림자가 생긴다. 이 세상이 밋밋한 평면이 아니라면, 따라서 이 세상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면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피치 못할 그림자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삶은 너나없이 소중하다. 따라서 그 응달은 잠깐이어야 한다.

다행히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준다. 지구가 움직인 탓이긴 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잠깐이나마 음지를 양지로 만들어준다. 그런데도 충분히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너무 튀어나오고 기형적으로 구부러진 돌출물은 음지가 양지로 바뀔 기회마저 앗아가 버린다. 오랜 그늘을 벗어나려 해도 뿌리가 깊어서, 이동할 방법이 없어서, 혹은 병약하여 양지로 옮길 여력조차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한데, 빛에는 특이한 성질이 참 많다. 그중에 ‘푸아송의 점’이라 불리는 현상은 아주 신기하다. ‘푸아송의 점’은 둥근 물체에 빛을 쏘아서 생긴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부분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부분이 생긴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마치,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는 오히려 빛이 모여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오묘한 현상으로 빛이 참으로 위대하고 자애로운 힘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푸아송의 점’은 빛의 회절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회절과 간섭은 빛이 파동성을 가졌다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는 특성이다.

즉, 빛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졌지만, 방해물의 뒷면까지 돌아 들어가는 회절의 특성도 가졌다. 이는 대쪽같이 단호한 성격이지만, 보이지 않아 소외된 곳에도 잊지 않고 손길을 내미는 따스함도 가졌다는 의미이다.

모든 사람이 빛을 한껏 나눠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빛의 특성을 이어받아 심장으로, 손끝으로 빛의 따스함을 나눠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빛의 피조물이 아니었던가. 기왕 돌출되어 있다면 때때로 몸을 옮겨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틀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활짝 벌린 두 팔을 오므리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그림자의 가장 깊은 곳에 밝은 점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온 누리에 고루고루 빛이 비쳐 모두가 따뜻해지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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