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던지는 '반려'라는 화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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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옥 작가 전시회 ‘온기전’
디테일 묘사·유연한 움직임
“진심으로 사랑해야 잘 보여”

'각자의 신세'. 오케이앤피 제공 '각자의 신세'. 오케이앤피 제공

박성옥 작가는 이전까지 동심을 잃지 않고 성장한 소녀를 주로 그렸다. 하지만 해운대 오케이앤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온기(溫氣)’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은 뜻밖에도 모두 고양이가 주인공이었다. 그전에도 간혹 그의 그림 속에 고양이가 등장했지만 주변부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고양이가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업業(karma). 오케이앤피 제공 업業(karma). 오케이앤피 제공

박 작가는 17년째 부산의 한 절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며 그림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깊은 산 속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사색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지난해 봄이었다. 남매지간인 까만 고양이 두 마리가 손을 잡고는 절을 두드렸다. 이들이 출가를 하겠다는 의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해탈이’와 ‘초심이’라는 법명을 얻었고(‘발심이’라는 법명도 준비해 두었다), 이번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 비록 머리는 깎지 않았지만 절에서는 ‘불살생계(不殺生戒)’라고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은 지켜야 한다. 가끔 해탈이가 비둘기나 쥐를 물어 죽여 스님들을 크게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단다. 어떻게든 교육을 시켰다는데, 지금은 해탈이가 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박성옥의 '온기전' 포스터. 오케이앤피 제공 박성옥의 '온기전' 포스터. 오케이앤피 제공

박 작가와 마주 앉아 인터뷰 중인데 맞은편에 버티고 선 거대한 고양이(곰 같기도 하다)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크고 동그란 눈이 웃고 있었다. 박 작가는 “고양이는 싫으면 성을 내며, 제멋대로 행동해도 사랑스럽다. 고양이가 가진 성격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고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線)으로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 가는 일은 참선과도 같다고 했다. 그리기가 곧 수행이었다. 이보성 큐레이터는 “고양이를 잘 그린다는 것은 디테일한 털의 묘사 외에도 유연한 움직임, 다양한 표정, 그들의 생태까지 진심으로 사랑해야 볼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고양이 리듬-예쁜 가사를 써 주고 싶어'. 오케이앤피 제공 '고양이 리듬-예쁜 가사를 써 주고 싶어'. 오케이앤피 제공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고양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편안해진다. 그림 속 고양이들은 벌을 보기도, 쫓기도 한다. 벌은 침으로 쏘고 작가는 날카로운 연필로 그리니 서로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은 연필과 골드 파우더를 사용해 두꺼운 종이에 그렸다. 연필은 작업을 하다 언제든 멈춰도 되어서 좋다고 했다. 박 작가는 “그림 그릴 때 생각을 담는다기보다 오히려 비워 내고 무(無)를 향해서 가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보는 사람도 어느 순간 잡념이 사라진다. 고양이란 반려동물 자체가 그렇지만, 고양이 그림의 끌림이 크다. 덩치 큰 까만 고양이가 아까부터 자꾸 말을 걸어온다. “나를 입양하실래요”라고 당차게 거래를 터 오는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사랑해 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했던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온기전’은 21일까지 열린다.


'자화상-네가 되는 얼굴'. 오케이앤피 제공 '자화상-네가 되는 얼굴'. 오케이앤피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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