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마르크스, 부산시민에 재정 후원 호소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대한
한글판 발간 사업 중단 위기
5년 만에 지원대상에서 탈락
부산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가 책임진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 Engels Gesamtausgabe, 이하 MEGA) 한글판 발간 사업이 중단 위기에 빠졌다. 강신준 소장이 마지막 수단으로 부산시민들의 후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강 소장은 2021년 MEGA 두 권을 한국어로 출간하며 “그동안 걸러지고 왜곡된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본 번역을 통해 한국 독자에게 제대로 전할 생각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부산일보> 2021년 7월 21일 자 21면 보도). 사실 국내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은 1987년 재판을 통해 출판이 합법화되기 전까지는 모두 금서였다. 이후에도 주로 문헌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단행본들이 나왔다. 한글판 사업은 검증을 거쳐 온전한 전집을 발간하자는 취지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우리 사회에서 바로잡는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국가 기초연구지원시스템의 효율화 및 선진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연구재단이 실시하는 2018년 연구재단 토대연구 지원사업에서 심사평가 1위로 선정됐다. 하지만 맑스엥겔스연구소가 5년 만인 지난해에 후속 사업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 한국연구재단은 종합의견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은 고전으로 연구과제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면서도 “목표 달성에 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더 이상 지원해 줄 수 없다”라고 모순된 이유를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편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2013년 마르크스의 원고를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인류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고전적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1991년 구소련의 MEGA 작업이 중단되었을 때 국제마르크스엥겔스재단을 설립해 사업을 부활시킨 것은 일본과 독일 정부였다. 일본은 자민당, 독일은 기민련이라는 보수진영이 집권하고 있을 때였다. MEGA 출판은 동양권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정부가 사업을 직접 주관 혹은 지원하며 가장 앞서 있어 한국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79권으로 계획된 MEGA 한글판은 다음 달에 전집 1부 제10권이 나오는 등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원 중단으로 전체의 85%는 미완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 소장은 “지난 5년간 축적된 문헌학적 자산, 국제 네트워크의 교류 자산 등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다. 연구비로 키운 연구 인력도 대부분 비정규직 교수라 생업을 찾아 떠나면 다음에 누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결국 마지막 희망을 부산시민들에게 걸기로 했다. 그는 “부산에서 ‘마르크스 자본 읽기 시민 강좌’를 처음으로 시작한 인연이 있다. 없어져도 그만일 수 있지만 부산 입장에서 보면 아까운 게 아닌가 싶어서 부산시민들에게 도움을 간절히 구한다”라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MEGA 한글판 발간에 작은 도움이 되고픈 부산시민은 맑스엥겔스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할 수 있다. 지역 언론을 통해 재정 후원을 요청하는 대시민 광고도 할 예정이다. 후원금은 전액 국세청 연말정산 자료에 ‘기부금’으로 자동 처리되고, 후원자에게는 MEGA 한글판을 보내 준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