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마스터피스' 부산을 꿈꾸며(feat. 캔디)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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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좋은 음악 20년 세월 너머 인기 누리 듯
잘 짜여진 도시는 오랫동안 사람 모아
인구 줄어드는 부산 개편이 필요한 시기
15분 도시 구호 아닌 매력 회복 계기 기대

“아빠, 이 노래 엄청 좋아.” 초등학생인 아들이 최근 노래 한 곡을 소개하겠다며 말을 붙여왔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높은 확률로 내 귀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가수 이무진 씨의 ‘신호등’ 같은 의외의 명곡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음악 도입부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어. 널 만날 거야. 이런 날 이해해.”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였다. 그랬다. 70년대와 80년대 태어났다면 모를 수가 없는 ‘캔디’였다. 단지 가수 ‘H.O.T.’가 아닌 ‘NCT DREAM’이라는 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H.O.T.가 부른 캔디의 발매일은 1996년 9월 7일이다.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NCT DREAM이 부른 캔디는 최근 트렌드에 맞게 조금 변형은 있었다. 하지만 등장만으로도 많은 팬들을 소리 지르게 했던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라는 후렴구와 멜로디는 그대로였다. 마스터피스(명작)는 세대를 거쳐 아들과 아빠의 귀를 만족시킨 셈이다. H.O.T.와 라이벌 관계였던 젝스키스의 팬이라면 캔디가 마스터피스라는 평가에 반대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커플’도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해 아들에게 소개했고 아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제대로 만든 마스터피스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만든 노래가 사람들의 귀를 끌어모으듯 제대로 만든 도시는 사람을 끌어모은다. 싱가포르는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다. 동양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시아 IT 업계의 가장 앞자리에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 정부는 전략적으로 스타트업과 기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육성하기 위해 자금도 풀고, 세미나도 연다. 또 스타트업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디지털노마드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도시 어디서든 빵빵 잘 터지는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한국인이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더 오래된 마스터피스 도시들도 있다. 이탈리아 로마는 2000년이 지난 도시지만 여전히 사람을 모은다. 때로는 다른 관광도시와는 다른 불친절함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유물을 지키려는 계획을 오랫동안 지켜온 덕에 ‘조상 덕에 사는 후손’이라는 부러운 타이틀을 달게 됐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 부산의 지금은 마스터피스라고 보기 어렵다. 부산은 저출생, 청년 유출, 초고령화로 인구 균형이 깨지고, 주류 산업마저 쇠퇴하며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2020년 10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인구 340만 명 선이 무너지더니 2년 만인 2022년 11월 330만 명 선마저 속절없이 붕괴됐다.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산업을 중심으로 도입부는 잘 짜여졌지만 후렴구에서 힘이 빠져버린 상황인 셈이다.

다행히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대도시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 : 7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대도시지역 청년들의 행복감을 살펴본 결과 부산(10점 만점에 7.34점)이 7대 도시 가운데 가장 높다. 사람이 떠나지만 만족도는 높은 도시. 아이러니한 두 결과는 부산이 마스터피스는 아니지만 희망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편곡이 필요하다.

2030 엑스포 유치에 전념하던 박형준 부산시장은 최근 또 다른 핵심 공약 중 하나인 ‘15분 도시’를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15분 도시의 개념을 제안한 이는 파리1대학 팡테온-소르본의 부교수이자 파리시 도시정책고문인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다. 그의 책 〈도시에서 살 권리〉에서는 15분 도시란 삶과 일터가 가깝게 연결돼 있고, 멀리 가지 않고도 간단히 쇼핑을 하고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으며, 교육과 문화, 레저 활동이 근거리 내에서 가능한 도시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공공장소를 걷고, 수변공간과 가까운 자연친화적인 도시, 자동차보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 우선순위가 되고, 밀집도가 낮아서 공유 전기차 같은 수요형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이 가능한 도시다. 15분 도시가 단순한 정치적 구호, 허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를 더욱 높여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 매력의 회복이라고 믿고 싶다.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 저 하늘을 바라다보며.” 캔디의 마지막 부분이다. 캔디는 길이는 1곡당 대략 4분 정도다. 캔디 4곡이면 맑은 하늘 아래서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를 즐길 수 있는 마스터피스 부산을 꿈꾸어 본다. 그럼 청년들도 언제나 부산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지 않을까?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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