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야를 넓혀 주는 요리
맛있는 소설 / 이용재
칠면조는 과연 맛이 어떨까
코스 요리, 소설 전개와 흡사
문학 속의 음식 관련 에세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용재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는 맛집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음식 평론가다. 단순한 감상평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한 그의 이야기에 공감이 갈 때가 많았다.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배경부터가 이 세계 사람들(?)과 달랐다. <맛있는 소설>은 어폐가 있는 제목이다. 첫 번째 이유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 평론가이자 문학 애호가가 쓴 문학 속의 음식 관련 에세이다. 두 번째는 쓴맛을 보여 주는 데 주저함이 없어서다. 괜히 읽고 나면 상상 속의 그 음식이 맛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과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이용재는 진지한 척하지만 실은 나름의 유머를 즐기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글을 보면 성격이 다 나온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대목은 추수감사절에 먹는다는 칠면조 요리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한반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칠면조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에 모두 칠면조를 먹는다니 그 맛이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몇 년 전 혹시나 해서 쿠팡을 들여다보니 칠면조 다리를 판매하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지금은 칠면조 힘줄도 있지만 강아지용이다). 흥분해서 대여섯개를 주문했다. 학수고대 끝에 받아 보니 다리 하나가 어른 팔뚝 크기로 묵직했다. 과연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고기가 퍽퍽한 게 맛이 별로였다. 냉동실에 처박아 뒀다가 결국 다 나눠 주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초청받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그들도 명절에는 딱히 크게 맛있지 않은 음식을 단지 명절이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있더라”고 점잖게 말한다. 가슴살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퍽퍽하고, 다리 살은 미안하지만 아예 손이 가지도 않았다니…. 그리고 역시나 이용재답게 칠면조가 더럽게 맛없는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첫째, 칠면조는 원래 못생기고 맛도 없는 식재료다. 둘째, 일 년에 한 번 추수감사절에만 먹으니 대부분의 칠면조는 그날만 기다리며 냉동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셋째, 덩치도 큰데 통째로 익혀야 하는 전통을 깰 수도 없으니 오븐 말고는 답이 없다. 조리 방법마저도 퍽퍽함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칠면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그린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를 소개하면서 쫓겨난 원주민들의 초라한 식탁을 이야기한다. 서코태시는 옥수수와 리마콩으로 만든 원주민들의 전통음식이다. 지금은 백인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을 기리는 음식으로도 자리 잡았다니 찬란하게 슬픈 음식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고민 끝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식을 다루는 부분도 흥미롭다. 애정이 식은 연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박하지만 하루키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년)부터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2000)까지 나온 17편 가운데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했더니 총 926구절이었단다. 이 책에서 다룬 나머지 저자의 책보다 하루키가 쓴 음식 책을 더 많이 새로 읽었다고 푸념이다. 하루키에 대한 저자의 문학적인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맥주에 대한 편견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맥주는 계속 마시다 보면 뭘 마시고 있는지도 의식을 못 하게 된다”며 “차라리 물을 마시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타인의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생중계하며 마무리를 한다. 영화에 나오는 ‘거북 수프’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잔뜩 긴장한 채 식사를 시작했던 사람들도 음식이 맛이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한결 더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식사를 한다. 그러고 보면 코스(시간 전개형 식사)도 소설과 비슷한 얼개로 펼쳐진다. 음식의 흐름 또한 소설이나 영화의 사건 전개와 흡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당신의 ‘인생 식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것은 삶의 시야를 넓혀 주는 요리였다”고 답을 한다. 이용재 지금/민음사/292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