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에 탄약 하역 부두가 있었죠”
해운대문화원, 역사 구술채록
“잊혀 가는 지역사 알리겠다”
‘우동·중동’ 등 4년째 발간
“한국전쟁 당시 동백섬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탄약 하역 부두가 있었다. 탄약을 실은 배들을 바다에 띄워 놓고 바지선으로 탄약을 내렸다. 동백섬에서 장산 아래쪽까지는 철도가 나 있었다. 여기서 탄약을 철도에 실어 전국으로 보냈다.” 2023 해운대 역사 구술채록 사업으로 지난해 연말에 발간된 <주민의 기억으로 담은 이야기 우동·중동>에서 다수의 주민이 증언하는 이야기다.
해운대해수욕장을 보유한 해운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괄목상대할 만큼 성장했다. 해운대는 사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부락이 어업과 농업을 이어가는 ‘촌’에 불과했다. 해운대문화원은 2020년부터 역사 구술채록 사업을 시작해 <재송>(2020), <미포 청사포 구덕포 가을포>(2021), <반여>(2022)를 이미 발간했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해운대의 현재 속에 숨겨진 옛이야기를 <우동·중동>을 통해 발췌했다.
우동(佑洞)·중동(中洞)은 조선 시대에 형성된 못안마을·운촌마을·대천마을·오산마을, 개항 이후 형성된 온천마을, 한국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설분곡마을 등 여러 시기에 걸친 역사적 배경을 지녔다. 우동은 장산으로부터 흘러든 춘천(春川)의 우안(오른쪽 언덕)에 위치한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장산역 부근에서 동백교까지 1600m가 복개도로로 이용되어 하천이 흐른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기 어렵다. 중동은 해운대의 중심부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이름은 일부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부올림픽타운 단지 일대는 승당마을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주둔하면서 승당마을이라 이름 붙여졌다. 승당삼거리라는 지금의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운촌(雲村)마을은 조선 시대에 김기원이 과거를 보러 갔다가 다른 선비들이 출신지를 남촌·북촌이라고 하자, 해운대의 가운데 자를 따 운촌으로 쓴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도 있다.
관광지 해운대의 역사는 근대에 들어 일본인이 온천을 개발하면서 시작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영향도 받았다. 해운대온천은 1887년 일본인 의사 와타나베가 해운대 온천장 주변 토지를 매수하고 욕장을 건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23년에는 서울의 부호 아라이 히츠타로가 온천 발견권을 양수받아 해운대온천기업합자회사를 설립하고 호텔과 풀장 등을 지어 본격화됐다. 운촌남자경로당 이상줄 회장은 “당시는 일본 사람들이 지배하며 우리는 목욕도 마음대로 못 했다. 온천풀장은 일본인이나 조선 사람 중에서 끗발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해운대는 미군과 인연을 맺게 된다. 미군은 장산에 탄약고를 설치했는데 종사하는 노무자가 5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몽득 전 우동어촌계장 역시 “한국전쟁 때 탄약 부두가 동백섬에 생겨 탄약을 장산 아래쪽까지 싣고 갔다”라고 증언했다. 195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일부는 미군 전용 휴양지로 지정되어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했다. 미군 부대로 인해 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 집결지 일명 609가 형성되었다. 미군 609부대가 있을 때 만들어져 그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해운대의 옛 모습이 사라진 걸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예전 해운대에서는 멸치가 많이 잡혔다. 멸치를 바로 삶기 위해 우동항 선착장에 설치된 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동백섬 입구 백사장에서 발로 비비면 바지락이 한가득 나왔다. 해운대에서 활동하는 해녀도 한창때 20명에서 지금은 6~7명으로 줄었다. 김몽득 전 우동어촌계장은 “마린시티 거기가 천혜의 지역이었다. 멸치가 운촌 바다에 들어오면 살아서 못 나갔다. 일본 사람들은 천혜의 지역을 매립한다고 바보라고 했다. 조개도 천지고 고기도 많았는데 그게 하나도 없어졌다”라며 아쉬워했다. 승당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김홍엽 씨는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게 잡아먹고, 수영복 없이 놀던 놀이터였던 승당 앞바다가 마린시티로 매립이 안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운촌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17일 운촌경로당에서 마을 당제를 여는 등 여전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수기 해운대문화원 원장은 “해운대의 급격한 변화로 잊혀 가는 토박이 주민들의 삶과 지역사를 사랑방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재미있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해운대문화원은 올해 구술채록 대상인 ‘반송’을 끝내고, 앞으로는 지역 내 문화유산을 심층 탐구할 계획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