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감독·배우 뭉친 ‘성난 사람들’, 美 에미상 휩쓸다
단막극·TV영화 부문
감독·작품상 등 8관왕
스티븐연 남우주연상
한국계 감독과 배우가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미국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올랐다.
이성진 감독은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단막극·TV영화부문 감독상과 작가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주연 배우 스티븐 연은 남우주연상을, 앨리 웡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작품상 주인공 역시 ‘성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은 캐스팅·의상·편집상까지 휩쓸며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가운데 남녀 조연상과 음악상을 제외한 8개 상을 거머쥐었다.
이성진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2008년 미국 장수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의 각본을 쓰며 방송작가로 데뷔했다. 스티븐 연도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각본과 연출을 모두 담당한 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제가 LA에 처음 왔을 때 돈이 너무 없어서 은행에 1달러를 저금하러 가기도 했는데, 당시엔 제가 에미상을 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며 “이 자리에 서보니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것이 체감된다”고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감독은 “작품 초반 등장인물의 충동은 사실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녹여낸 것”이라며 “살다 보면 사랑받을 가능성조차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성난 사람들’ 동료들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줬다”고 전했다.
스티븐 연은 남우주연상에 호명된 뒤 시상식 무대에 올라 “굉장히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저를 지켜준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판단을 하는 건 쉽지만 남에게 공감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그 방법을 대니(극중 배역)가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마트 주차장에서 생면부지의 두 주인공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10부작 드라마다. 난폭 운전으로 얽히게 된 두 남녀의 복수극으로, 한국계 이민자들의 고충과 삶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계 사회를 배경으로 한 만큼 한국어가 자주 등장하는 점도 특징이다.
에미상은 ‘방송의 오스카’로 불리는 미 방송계 최고 권위 상이다. 이 작품은 앞서 지난 7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TV 단막극·영화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