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연두색 번호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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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에 3억 원이 넘는 차라니! 보통 사람으로선 꿈도 꾸기 힘들 텐데, 지난해 무려 1858대의 3억 원 이상 법인 승용차가 신규 등록됐다. 신규 등록은 새 차를 구입했다는 뜻. ‘억’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런데 이 수치는 범상치 않다. 2022년 신규 등록 3억 원 이상 법인 승용차는 1173대. 지난해 무려 6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한 해에 이렇게 큰 폭의 증가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짐작되는 바가 있다. 바로 연두색 번호판이다.

법인 차에는 기름값을 경비로 처리토록 하는 등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그래서인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도로에서 달리는 초고가 승용차 4대 중 3대는 법인 명의다. 그런데 법인 차 가운데 상당수는 개인 용도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외관으로는 법인 차인지 개인 차인지 식별이 불가능하다 보니, 그동안 법인 차의 사적 이용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정부는 궁리 끝에 지난 1일부터 신규 등록하는 취득가액 8000만 원 이상 법인 승용차에는 반드시 연두색 번호판을 달도록 했다. 택시처럼 법인 차의 번호판을 눈에 띄게 만들면 법인 차의 사적 이용이 줄지 않겠냐 여긴 것이다.

요컨대 지난해 3억 원 이상 초고가 승용차 구입이 유달리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연두색 번호판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에 법인 차를 미리 사 둠으로써 향후 사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번호판 색깔을 바꾸게 했으니 그런 속임은 완전히 사라질까.

장담할 수 없다. 연두색 번호판을 도입했지만 갖가지 다양한 편법과 꼼수가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요즘 SNS 상에서는 연두색 번호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새 차를 구입한 직후 중고로 파는 척하며 되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승용차를 중고로 가장해 8000만 원 이하 금액에 산 것처럼 꾸미면 된다는 게다.

억대의 차를 사는 사람들이 세금 그게 몇 푼이나 한다고 그리 쪼잔하게 나오는가 싶어 실소하게 된다. 그조차 아까우면서도 부자 티를 내려는 건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72억 원짜리 벤틀리를 타봤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가진 게 무슨 죄냐’는 취지로 역설하지 않았나. 이 땅의 돈 많은 이들이여, 부디 당당한 부자가 되시라.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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