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만 신용사면, 취약계층 지원 vs 총선 포퓰리즘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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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 원 이하 연체자 대상
신용회복 목적 저금리 대환
성실 상환자 역차별 지적도
상생금융·금투세 등 관치 논란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전격 결정한 ‘신용 대사면’을 두고 금융권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협약식’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전격 결정한 ‘신용 대사면’을 두고 금융권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협약식’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전격 결정한 ‘신용 대사면’을 두고 금융권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취약계층의 신용회복 기회를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이에 대한 위험은 금융사가 떠안을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과 총선을 앞둔 ‘선심성 표풀리즘’이라는 지적도 높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 등 전 금융업권 협회와 신용정보원, 12개 신용정보회사는 지난 15일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 11일 당정 협의에서 결정된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 지원 결정에 따른 실제 조치다.

협약에 따라 2021년 9월 1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발생한 2000만 원 이하 연체 등을 올해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이르면 3월 초부터 연체 이력 정보의 공유와 활용이 금지된다. 금융권은 전산 작업 등을 거쳐 이르면 3월 초부터 연체 이력 공유·활용을 제한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개인 대출자 기준 약 290만 명의 장·단기 연체정보 공유·활용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대출을 연체할 경우 추가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아왔는데 이를 없애주겠다는 뜻이다.

290만 명 중 250만 명은 이번 신용회복 조치로 신용점수가 평균 39점 올라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대환대출 등을 통해 저금리 대출 전환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 15만 명이 추가로 관계 법령에 따른 카드 발급 기준 최저 신용점수(NICE 기준 645점)를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 25만 명은 추가로 은행업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NICE 기준 863점)를 넘어 대출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시점을 볼 때 ‘총선용 신용 대사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빚을 제때 갚은 것이 ‘바보가 아니겠냐’는 역차별 지적도 제기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체하지 않으려 노력해 온 이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가 어렵거나 금리가 높으면 정부가 또 비슷한 정책을 내줄 것이란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며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시장의 질서를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려움에 부닥친 서민·소상공인의 상황을 감안해 숙고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전요섭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식 정책이라는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책은 아니”라며 “도덕적 해이 우려가 발생할 수 있지만 예외적인 지원책인 만큼 그럴 수준은 아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신용 대사면 결정이 당정 회의 직후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 자체가 금융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 아래 당국의 일방적 주도로 정책을 추진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와 협의한 내용도 아니고 이미 일방적으로 결정된 내용을 따르라는 분위기”라며 “이른바 ‘돈 잔치’ 논란 이후 당국의 이 같은 관치 행보가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번 신용 대사면에 따른 채무자들의 연체 이력 삭제가 금융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위험이 큰 이들의 연체 이력이 없어 이들에 대한 대출을 내줄 경우 향후 부실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융사의 신용평가 체계 왜곡 현상 등도 우려되는 대목으로 꼽힌다.

또한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 이후 발표된 은행권의 2조 원 규모 ‘민생금융 지원’ 방안도 대표적인 관치금융으로 거론된다. 은행이 고금리에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정부가 이를 사실상 강요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정부·여당이 1400만 명에 달하는 개미 투자자들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내놓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활황기 당시 급증한 개미 투자자 표심을 잡기 위해 지난해 △공매도 한시 금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 조치에 나선 데 이어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약속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서는 역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국회 입법 사안으로 야당 협조가 필요한 만큼 총선을 겨냥한 사실상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건전 재정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한 예산을 꽁꽁 잠그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돈 퍼주기’ 정부로 돌변했다”며 “총선만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돈을 풀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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