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반도체발 전기료 청구서
지난해 11월 수도권에 전압 강하 현상으로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 사고가 있었다. 원인은 변전소 노후 장치 고장 탓. 불과 0.05초 동안 전압이 떨어졌는데 피해는 경기도 전역에서 발생했다. ‘불량 전기’로 대규모 피해를 입을 뻔한 곳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었다. 반도체 초정밀 공정은 순간적인 정전과 전압 불안정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다행히 즉각 대응해 생산 차질을 막았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욕을 엄습하면서 뉴욕 전역에 전기가 끊겼는데 이후 8개 데이터센터가 멈추면서 피해가 겉잡을 수 없게 커졌다. 증권거래소 폐장, 언론사 뉴스 서버 먹통으로 국제 허브 도시가 마비된 것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일본 정부는 전력 15% 의무 감축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클라우드 중단으로 인터넷이 막히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상황 판단으로 데이터센터에만 전력 제한을 풀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전력 대량 소비 시설이고, ‘불량 전기’가 가공할 피해로 이어지는 공통점을 갖는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AI) 결합 추세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생성형 AI 학습에 한 개의 국가가 1년 사용할 전력이 들어갔고, 서비스 확대로 ‘전기 블랙홀’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AI발 에너지 부족과 원전 확충이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정부는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를 추진한다. 계획대로라면 10GW 전력원이 필요한데 이는 1.4GW 용량 원전 7~8기와 맞먹는다.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전력 수요도 늘어나니 원전 10기도 모자랄 판이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기정사실화한다. AI·반도체발 전력 수요가 지방에 추가 발전소를 안기는 셈이다.
정부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지역별 차등 전기료를 추진하니 벌써부터 수도권에서는 전기료 인상 반대 여론이 고개를 든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소프트뱅크가 데이터센터 이전 예정지로 부산과 경남 김해를 검토했던 걸 떠올려 보라. 원전의 안정적 전력 공급과 일본에 비해 반값인 전기료가 이유였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노후 시설로 송·배전하다가 연간 1조 7000억 원이 손실된다.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수도권에 전력 대량 소비 시설이 밀집되는 게 합리적일까? 아니라면 차등 전기료라도 실현해야 정의롭지 않겠는가.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