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잊을 수 없는 아시안컵 8강 이란전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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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철 스포츠부장

1996년 사상 최악 2-6 대패 시작
5개 대회 연속 8강서 만난 ‘악연’

다에이 4골·이동국 골든골 ‘기억’
한국, 상대 전적 3승 2패로 앞서

클린스만호, 해외파 선수만 14명
역대 최강, 64년 만의 우승 기대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아시아 국가로는 최다인 월드컵 본선 11회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인 6회 우승 등 국제 무대에서 빛나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아시안컵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것은 역대 두 차례(1956·1960년)로 참가팀이 4개국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숙적’ 일본이 4차례 우승(1992·2000·2004·2011년)한 것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성적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이번 카타르 대회 16강전에서 승리한다면 8강에서 아시아 최대 라이벌인 이란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이란은 아시안컵 8강전에서만 5번 연속으로 마주친 ‘질긴 악연’을 갖고 있다. 5차례 맞대결 결과는 한국이 3승 2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두 팀 간 8강전에서 승리한 팀이 단 한 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도 기이한 사실이다.

두 팀이 아시안컵 8강에서 처음 맞붙은 것은 1996년 아랍에미리트 대회다. 한국은 전반 김도훈과 신태용의 골로 2-1로 앞섰다. 하지만 후반 호다디드 아지지의 골을 시작으로 알리 다에이에게 무려 4골을 허용하며 2-6으로 대패했다. 한국 대표팀이 아시아 팀을 상대로 가장 큰 점수 차로 패한 경기였다. 이 경기 후 당시 사령탑이었던 박종환 감독은 바로 경질됐고, 국내 한 방송사는 ‘한국 축구 대참사’를 주제로 원인과 대책을 진단하는 특별 토론회를 편성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과 이란이 아시안컵 8강에서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000년 레바논 대회다. 양 팀은 전반을 0-0으로 마쳤고, 한국은 후반 카림 바게리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경기 막판 김상식이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연장전에서 이동국이 극적으로 골든골을 뽑아내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이동국은 이 대회 사우디전과 3~4위 중국전에서도 한 골씩을 터뜨리는 등 모두 6골을 기록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양 팀이 아시안컵 8강에서 세 번째로 맞붙은 2004년 중국 대회에서는 모두 7골이 터지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이란이 전반 알리 카리미의 선취골로 앞서나가자 한국의 설기현이 곧바로 1-1 동점골을 쏘아 올렸다. 이란의 카리미가 다시 추가골을 터뜨리자 이번엔 이동국이 2-2 동점골을 넣었다. 전반을 2-2로 마친 양 팀은 후반에도 피를 말리는 혈투를 벌였다. 이란이 한국 수비수 박진섭의 자책골로 다시 앞서나가자 김남일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동점골을 뽑아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종료 10분여를 남기고 카리미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줘 결국 3-4로 분패했다. 이날 이란이 앞서가면 한국이 바로 따라가는 팽팽한 명승부가 펼쳐졌다. 이 대회에서 이란의 카리미와 한국의 이동국은 아시아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지만 팀은 불운하게도 우승하지 못했다. 카리미와 이동국은 이 대회에서 각각 5골과 4골을 넣으며 득점 1, 2위를 차지했다. 이란은 당시 다에이, 바게리, 카리미, 아지지를 비롯해 자바드 네쿠남, 메흐드 마다비키아 등 유럽과 중동 리그에서 뛰는 호화 멤버가 대표팀을 이끌었다.

2007년 아시안컵 대회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4개국에서 개최됐다. 아시안컵 역사상 최초로 2개 이상의 나라에서 공동으로 열린 이 대회 8강에서도 두 팀이 또 다시 만났다. 연장까지 가는 0-0 접전 끝에 한국이 승부차기로 승리해 4강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은 이라크와의 준결승에서 0-0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석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이라크가 사상 최초로 정상에 오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2011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컵 8강에서도 한국과 이란은 전후반 90분 동안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 한국의 윤빛가람이 그림 같은 결승골을 터뜨려 한국의 4강 진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승부차기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하지만 구자철은 5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은 박지성과 손흥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함께한 대회였다. 박지성은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태극전사 26명 중 중동 무대를 포함한 해외파 선수가 14명이나 된다. ‘역대 최고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클린스만호가 한국 축구 팬들의 오랜 염원인 64년 만에 아시안컵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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