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탁금 수십억 횡령, 부산시 공무원 집념에 꼬리 잡혔다
부산지법 공무원 48억 횡령사건
시 공원정책과 공무원이 첫 인지
공원 개발 과정서 토지오염확인
전 소유주에 구상금 청구 소송
30년 전 청산됐지만 포기 안 해
이상한 낌새 알아채고 법원 연락
최근 법원 공무원이 부산지방법원과 울산지방법원 등지에서 근무할 당시 전산 조작으로 수십억 원대 법원 공탁금을 횡령한 사실(부산닷컴 2023년 12월 24일 보도)이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해당 사건을 처음 인지하고,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에 부산시 공무원의 끈질긴 추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1일 부산지법에 따르면 부산지법 7급 공무원 A 씨는 종합민원실 공탁계에 근무하면서 공탁금 48억 10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이전 근무지인 울산지법에서도 경매 배당금 7억 8000만 원가량을 부정 출급했다.
그동안 A 씨의 범죄는 법원이 자체 조사해 수사로 이어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A 씨 범죄가 발견된 데에는 부산시 소속 공무원 B 씨의 집념 어린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B 씨는 최근 부산시가 수용한 부지를 공원으로 개발하는 업무를 하다 범죄를 의심하게 됐다고 한다. 시에 수용된 부지는 1990년에 청산 종결된 C공업 소유 부지였다. 청산 종결됐다는 것은 C공업이 회사 해산 후 청산 절차를 마치고 법인격이 소멸된 상태라는 의미다. 시는 부지 수용 당시 수용보상금을 C공업을 피공탁자로 해 법원에 공탁했다. 회사는 청산 후 30여 년이 지나 실체가 없어졌지만, 등기부상 명의자가 C공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원 개발 진행 중 해당 부지 일부가 오염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는 토양을 우선 정화한 후 전 소유자를 상대로 정화 비용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았고 여기에 C공업도 포함됐다. 시는 마침 청산 처리된 C공업이 피공탁자로 된 공탁금을 찾아냈고 2022년 12월 이를 청구하는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수십 년 전 청산된 회사를 상대로 진행하는 소송이다 보니 소송 자체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부산시 공무원 B 씨는 1년 넘게 해당 사건에 매달렸다고 한다. C공업 청산 서류와 공탁 서류를 찾아내야 했고 토양오염 정화 비용 자료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수개월이 소요된 끝에 지난해 8월 시가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고 뒤이어 시는 C공업 명의의 공탁금 1315만 원을 압류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탁금은 이미 출급된 상태였다. 출급은 이미 누군가 공탁금을 찾아갔다는 의미다. B 씨는 이를 의아하게 여기고 지난달 부산지법에 해당 사실을 문의한 것이 수십억 원대 공탁금 횡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첫 시작이었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공무원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사실 확인에 나서 횡령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산시 소송 업무 담당자 김경준 변호사는 “공탁금을 횡령한 A 씨는 1990년에 청산된 회사의 공탁금을 찾으러 올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파렴치한 범행이 공탁금을 기어코 찾겠다고 노력한 한 공무원에게 꼬리를 잡혔다”고 말했다.
토지 오염 사실을 확인하고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B 씨는 “착잡하다”고 말했다. B 씨는 “공익을 생각하며 돈을 찾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A 씨는 공탁금을 횡령해왔다니 같은 공무원으로서 착잡하다”며 “공무원이 사익을 앞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지검은 지난 18일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A 씨를 구속 기소했다. 울산지법도 A 씨가 경매계 근무 기간 배당에 관여한 720건에 대해 추가 부정 출급 사례가 있는지 전수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