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새 책] 억지로라도 쉬어가라 外
■전기, 밀양-서울
밀양에서 벌어진 ‘탈송전탑’ 운동의 의미를 짚어 보는 책이 왜 지금 나왔을까.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에너지 정의와 탈핵 운동의 역사를 기술할 때 가장 먼저 호출해야 할 이름이 바로 ‘밀양 할매’라고 말한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국가폭력과 마을공동체 파괴에 대한 이야기, 후반부에는 투쟁 속에서 피어난 여성 연대와 탈핵 운동가로서의 밀양 할매를 재조명한다. 김영희 지음/교육공동체벗/386쪽/2만 2000원.
■억지로라도 쉬어가라
어느 생명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해야 한다. 책의 첫째, 둘째 페이지에 각각 쓰여 있는 글귀다. 녹색 바탕에 흰 글씨가 선명하다. 강원도 만월산에서 현덕사라는 산사를 가꾸고 있는 현종 스님의 따뜻한 이야기이다. 백중(百中)에는 천도재를 봉행하는데 현덕사에서는 동식물 위패도 함께 세워 두고 천도재를 지낸다고 한다. 현종 지음/담앤북스/256쪽/1만 6800원.
■그랜드투어 이탈리아
이탈리아만큼 매력적인 여행지도 드물다. 유적이 널려 있으면서, 물가가 저렴하고, 음식까지 맛있기 때문이다. 고전학자인 저자가 특히 유적지와 박물관이 따분했던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유적과 유물이 지닌 사연을 알고 나면 이전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시칠리아에서 시작해 로마를 거쳐 북부로 올라가면 이탈리아를 시대순으로 볼 수 있다. 강대진 지음/도도네/464쪽/2만 6000원.
■치즈 마이 라이프
저자의 이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잘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에 들어가 요리를 배워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차린 분이다. 그러고도 다시 치즈와 살루미에 빠져 세계 각지로 떠났다. 부제는 ‘아티장(오랜 노하우를 지닌 장인)푸드의 본질을 찾아서’이다. 음식에 정답이 없듯이, 인생에 정답이 하나만은 아니다. 조장현 지음/시대의창/288쪽/2만 원.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제목이 눈길을 끄는 신간인데 <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썼다. 철 지난 이론에 기대어 디지털 자본주의의 영리한 통치 기술을 간파하는 데 실패한 마르크스주의, ‘자유와 존엄’을 잃어 가면서도 어떤 저항감이나 비판 의식도 품지 못하는 무감각한 우리 세태를 동시에 겨냥한다. 성장이 “암 덩어리들의 목표 없는 번성”이라고 단언한다. 한병철 지음/전대호 옮김/김영사/212쪽/1만 6800원.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세계사
일상 속 곳곳에 자리 잡은 300여 가지 사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두루 훑어본다. 하이힐의 유행은 루이 14세의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에서 시작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여행복을 한꺼번에 여러 벌 주문했다가 도피 계획이 들통났다. 우산을 쓰는 남자는 ‘나약한 놈’ 취급을 받았단다. 찰스 패너티 지음/이형식 옮김/북피움/528쪽/3만 3000원.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대장 고양이는 인간에게 실망해 무리를 이끌고 지구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세 작가는 과연 고양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인공 자궁은 여성해방에 기여할까?’ ‘왜 3인 육아 체제가 기본값일까’와 같은 이들이 주고받는 질문은 날카롭다. 매주 텔레그램에 모여 뜨거운 토론을 벌인 결과를 소설처럼 엮었다고 한다. 김보영,이은희,이서영 지음/지상의책/396쪽/1만 85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